“영국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묶는 건 상상할 수 없어요.”
영국 런던의 왕립자치구인 킹스턴시의회 박옥진(58, 엘리자베스 박) 의원이 말했다. 시의원 자격으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박 의원은 밤에는 시의원으로 일하지만, 낮에는 정신병원 소속 간호사다. 그는 영국 정신병원 간호사 중에서 유일한 한국인이라고 한다.
“정신과 간호사로 일한 12년간 한 번도 정신질환자를 강박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 없어요. 간호학과 시절부터 철저하게 ‘강박할 수 없다’, ‘환자의 신체 구속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속해서 교육받았어요. 당연히 영국에는 환자들을 힘으로 제압하는 의료진은 없습니다.” 춘천예현병원·부천더블유(W)진병원 등 한국 정신병원의 폐쇄병동에서 격리·강박으로 인해 벌어진 사망사건에 관한 설명을 들은 뒤 나온 답이다. 그는 한국의 정신병원에선 증상이 최고조에 이른 환자를 묶는 행위를 불가피하게 여기고 보건복지부 지침까지 있다고 하자 “강박은 전혀 불가피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킹스턴은 유럽 최대 한인타운인 뉴몰든 지역이 있는 곳이다. 킹스턴 인구가 20만여명인데, 한인 수가 2만명이다. 탈북민도 700여명 된다. 영국 노동당과 보수당 사이 중도파로 분류되는 자민당 소속인 박 의원은 2022년 처음 킹스턴시의회에 입성한 뒤 2024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부시장으로 선출됐다. 올해 5월에는 시의원 연임에 성공했다. 한겨레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영국 지부 부회장으로 제22기 민주평통 유라시아지역회의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와 만나 영국과 한국의 정신병원 이야기를 나눴다.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케이티엑스(KTX) 서울역사 내 한 카페에서 박 의원과 마주 앉았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연극 공부를 하려 런던에 갔다. 1996년의 일이다. 런던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1년 과정의 예술행정·문화정책 석사를 마치고 한국을 오가며 연극 연출과 무대 조명 일을 했다. 킹스턴대 간호학과에 입학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뒤인 2011년이다. 그 사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2006년부터 장애인 특수학교에서 시작한 봉사활동이 간호대 입학 계기가 됐다고 한다.
“10살 넘은 아이들의 식사를 도와주거나 슈퍼마켓 물건 구매 등 생활하는 법을 알려줬어요. 의료사고로 태어나 앉지도, 서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9살짜리 한국 아이를 돌본 적도 있지요. 정신질환을 겪는 아이들도 만났고요. 그런데 봉사로는 부족했어요. 몸이 불편하거나 마음을 다친 이들에게 좀 더 ‘레벨업’된 기여를 하고 싶었어요.”
간호사로서 첫 직장은 2014년 들어간 홀리본정신병원이었다. 2년 뒤 옮긴 스프링필드정신병원에서는 병동 매니저로 승진했다. 2023년부터는 톨워스정신병원 소속의 수석 시니어 간호사로 지역사회 환자들을 담당한다. 상태가 악화한 환자 집을 2인1조로 방문해 상담하고 진단과 처방조처를 내린다.
병동 매니저를 맡았을 때 가장 어려운 일이 입원환자 맞기였다. “조현병·조울증 환자가 극히 안 좋은 상태에서 새로 들어오게 되면 병동 전체가 술렁이며 긴장하죠. 닥치는 대로 던지거나 부수는 등 행동 제어가 안 되는 환자를 진정시켜야 하잖아요.”
이런 환자를 상대로 6~7명이 ‘팀플레이’를 한다. 의사·간호사·심리 치료사·사회 복지사·재활 치료사·직업 알선 전문인·간호 보조사 등이 참여하는데, 이를 엠디티(MDT, multi disciplinary team)라고 부른다. 먼저 대화를 한다. 통하지 않으면 로라제팜 등의 진정제 투약을 시도한다. 환자가 거부하면, 다음은 주사제 투여다. 호흡억제 등의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전문 훈련을 받은 이들이 양쪽에서 잡는다. 그리고 전면이 통유리로 된 1인실로 환자를 옮긴다. 간호사들은 15분에 한 번씩 심장·맥박·호흡 상태를 체크한다. 손쉬운 통제를 위해 강박 등의 조처를 했다가는 간호사 자격 박탈은 기본이고 법정에 설 수 있다.
물론 국가가 전액 진료비를 책임지는 영국의 무상의료 시스템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의료의 공공성보다 병원의 수익성이 우선시되는 한국에서 이런 인력 투입은 꿈만 같다. 그는 “영국도 원래 이렇지는 않았다. 1960년대 웨일스 카디프의 엘리 정신병원에서 발생한 환자 학대 스캔들과 1970년대 인권침해로 논란이 된 위팅엄 정신병원 청문회 등의 굵직한 사건들을 거쳐 정신건강 서비스 개혁이 완성됐다”고 했다. “한국에서 이런 나라들의 선진 정신병원 시스템을 많이 보고 배워갔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간호사 박옥진’은 매일 저녁이 되면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간호사 일은 나인 투 파이브(9시 출근, 5시 퇴근)”라고 했다. 영국의 지방의회 의원들은 대부분 생계를 위해 두 가지 직업을 갖는다. 시의회 본회의는 한 달에 한 번뿐이지만, 건축 허가 등을 비롯한 3개 소위원회 활동을 해야 하고, 당 정책 토의를 위한 그룹미팅, 교통·공원 문제 등을 논의하는 지역사회 분과 회의 등을 소화하느라 하루도 쉬기 힘들다. “한인들이 영국의 지역사회 복지 체계와 정책에서 소외되지 않고 잘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서포트하고 싶다”는 열망이 정치 입문으로 이어졌다. 내년에는 킹스턴에서 최초의 한인 출신 시장이 되는 야심 찬 꿈도 꾼다. 시장이 되면 미국의 엘에이(LA)처럼 뉴몰든 지역에 한인타운 상징물을 세우고 싶단다.
어쩌면 정신병원 간호사와 정치인의 길은 다르지 않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정신과 간호사로 일하면서 한 인간으로 더욱 성숙해졌어요. 인생의 의미를 경쟁이나 성공이 아닌 삶의 진정한 행복에 두고 살게 됐거든요. 정치도 사람들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문제를 풀어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생각합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