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에서 살사댄스를 추는 선이입니다. 살사댄스에서는 남자는 춤을 이끄는 리딩을 하고 여자는 팔로잉을 하는 문화가 있는데, 저는 여자라 리더가 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제 경험에 곧바로 차별금지법을 적용할 순 없지만, 누구나 언제든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걷고싶은거리. ‘[로딩 차별금지법] 만드는 중…’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선이(활동명·41)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여자는 리더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살사댄스 동호회 가입을 거절당한 경험을 말했다. 애초에 남성이 리드하고 여성이 팔로잉한다는 규칙을 가진 춤이어서 ‘여성 리더’ 요청은 동호회에서 이상하게 보고 거절했다고 한다. 선이씨는 “여자도 리더, 남자도 팔로워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다름 때문에 배제되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소한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다”라고 말했다.
선이씨와 같은 티셔츠를 입은 10여명이 이날 ‘차별금지법제정송’에 맞춰 율동을 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함께해달라”고 외쳤다. 이들은 지난 4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액션크루’(액션크루)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뭉친 연대체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가 법안을 만드는 데 목소리를 내고 싶은 시민을 연결하기 위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액션크루’를 모집했다. 30여명의 시민이 저마다의 이유로 액션크루에 참여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나이, 장애, 출신국가, 혼인여부, 성적지향, 학력 등을 이유로 고용과 교육 분야 등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지난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지 올해로 20년째다. 지난달 24일과 28일 액션크루에 참여한 선이씨, 이소영씨, 도치씨, 안씨 등 네 명에게 이들이 왜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를 원하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티(IT) 기업에서 일하는 이소영(31)씨는 4년째 동성 파트너와 함께 살고 있다. 이씨는 “사회의 정상성을 벗어난 사람이라고 낙인 찍히는 게 싫어 파트너를 친구라고 소개할 때도 많다. 저희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동성혼 법제화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파트너와 함께 액션크루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대학생 도치(활동명·24)씨에겐 학창시절 어머니와 아버지의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말투를 희화화하며 따라 했던 담임 교사의 발언이 여전히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성인이 되고서는 가정 밖 청소년 지원기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아르바이트 일자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법적 성별과 겉모습이 달라 쉼터에 들어가지 못했던 아이들을 볼 때마다 ‘돕고 싶다’는 마음을 느꼈다. 도치씨는 “청소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중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참여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이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모두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밝혔다. 안(활동명·40대)씨는 “차별금지법은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거나 특정 집단만을 위한 법이 아니라, 일터와 학교 등에서 누구나 부당한 일을 겪지 않도록 보호하는 법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와도 같다”고 했다. 이소영씨는 “현재도 성차별, 장애차별 등을 규제한 개별적인 차별금지법이 있긴 하지만 ‘나이 든 여성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채용을 거부당한 경우 차별 사유가 복합적이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든, 어느 곳에서든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하나의 법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도치씨도 “차별을 규제하는 최소한의 기준이 생겨야 전반적인 시민들의 인식과 문화도 변화할 것”이라고 했다.
액션크루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오해를 풀고, 더 많은 이들에게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각자 잘하는 일을 맡았다. 도치씨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범죄자도 제한 없이 일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성범죄 전과자가 아동기관에서 일할 수 없는 필수적인 제한은 유지된다.’ ‘음주운전 등으로 충분한 형을 치렀음에도 새로 취직한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면 차별이 될 수 있다’고 답하는 카드뉴스를 만들어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소셜미디어(SNS)에 올리고 있다. 안씨가 속한 조는 차별금지법이 모두의 의제라는 내용을 담은 홍보물을 만들어 전국 책방, 카페, 식당 등 희망하는 곳에 배포하기로 했다.
캠페인의 효과도 느꼈다. 거리 캠페인에 나섰던 선이씨는 “차별금지법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유인물을 나눠주는데, 광고전단인 줄 알고 지나쳤던 분들이 되돌아와서 다시 받아가기도 했다. 조금이나마 캠페인이 성공한 것 같아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액션크루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차별금지법을 알리는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동시에,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라며 뒷짐을 지고 있는 정부와 국회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소영씨는 “액션크루를 해보니 국회와 정부도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국가가 먼저 차별은 잘못된 것이라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단순히 처벌 도구가 아니라 사회에서 무엇을 옳다고 여기는지 보여주는 신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