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철 당신의 마침표] 13_기호화된 현대인의 죽음
용납하기 어려운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환자와 가족 그리고 주치의는 늪에 빠졌다. 미국의 윤리학자 대니얼 캘러핸은 노인들의 죽음은 ‘용납이 가능’(tolerable)하다며 노년기에는 연명보다 존엄한 마무리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 말인즉슨 아직 삶을 꽃피우지 못한 어린 청춘의 죽음은 누구에게도 용납이 어렵다. 가족들은 마지막까지 치료법을 찾아달라고 매달리고 의료진은 큰 심리적 압박에 시달린다. 먹지도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로 석달째 입원 중인 젊은 환자가 있다. 말기 상태이지만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다. 슬쩍 호스피스 완화의료 얘길 꺼냈지만 가족들은 단칼에 거절했다. 주치의는 환자를 요양병원으로 전원했지만 통증을 이유로 하루 만에 응급실로 되돌아왔다. 대형병원을 떠나는 순간 공포와 함께 통증이 밀려왔다. 주치의는 마약성 진통제를 연거푸 증량했음에도 환자는 매일 아침 아프다고 울상을 지었다. 주치의는 큰 무력감의 수렁에 빠진 듯 보였다. 완화의료팀은 유독 밤에만 통증이 심해지는 것에 집중하여 심리적 요인을 찾고자 했다. 환자와 가족들과 대화하며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을 회피하려는 방어기제에 조심스레 다가갔다. 하지만 수렁 속에서 절제력이 바닥난 주치의는 끝장을 보려는 듯 그 와중에 마약성 진통제를 다시 두배로 올렸다. 되돌아올 길이 두배 더 멀어졌다. 완화의료팀이 껴안아야 할 대상은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과 소진된 의료진까지 포함한다.
말기 환자를 대하는 의료진들은 예견된 비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감정에 갑옷을 입힌다. 치료자로서의 노력은 더 큰 실망과 무력감으로 환원되기에, 난치병 연구자로 마주해야 출구 없는 비극을 견딜 수 있다. 4기 암 환자들이 몰리는 대형병원일수록 연구자의 정체성이 강화된다. 에마 톰슨 주연의 2001년작 영화 ‘위트’(Wit)는 치료자 대신 연구자에 집중하는 대학병원 의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48살의 비비언은 대학에서 17세기 시인 존 던의 시를 강의하는 영문학 교수이다. 존 던은 ‘죽음이여, 오만하지 말라’ 등 죽음의 의미를 사유하는 시를 다수 남겼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동일한 존 던의 시에서 제목을 가져온 것이다. 어느 날 비비언은 복통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4기 난소암 진단을 받는다. 주치의 하비 켈레키언 교수는 처음부터 완치 방법이 없다며 임상 시험을 제안하면서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기에 강해질 것을 주문한다. 비비언은 자신은 누구보다 강인한 사람이라 자부했고, 병원 최초로 시험 항암제 최고 용량을 8개월 동안 견뎌낸다. 의사들은 그의 집념에 경탄했고 그는 소중한 시험체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만 담당 간호사 수지는 그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훌륭한 시험체가 될수록 비비언의 인격체로서의 가치는 철저히 무시되어 갔기 때문이다. 결국 비비언은 숨이 멎는 순간까지 항암제의 고통이 더해진 암의 통증뿐만 아니라 모멸감까지 견뎌 내야 했다. 비인간적인 2001년 미국 병원 상황은 2026년 대한민국에 그대로 옮겨진 듯하다.
영화의 제목 위트는 재치 있는 상황을 의미하기에 나는 보는 내내 반전을 기대했다. 삶에서 죽음의 의미를 탐구한 존 던을 연구한 비비언이 결국은 병원을 탈출할 거라 믿었지만, 내가 마주하는 현대인의 흔한 죽음과 다를 바 없었다. 굳이 찾는다면 인문학을 전공해도 그 생각과 삶이 과학을 숭배하는 의사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둘 다 학문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면 영화는 병원과 의료인뿐만 아니라 비비언으로 상징되는 현대인을 동시에 비꼰다. 씁쓸한 위트다. 대학원 시절 비비언은 존 던의 시를 띄어쓰기와 문장 부호 단위로 분석하지만 지도 교수는 시를 있는 그대로 음미하길 주문하며 책을 덮고 밖으로 나가 삶을 즐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비비언은 곧바로 도서관으로 돌아간다. 그 모습이 죽음의 불안을 떨쳐내지 못하고 남은 시간을 병원에서 모두 허비하는 환자들과 겹쳐 보였다.
과학을 숭배하는 의사들에게 연민과 공감력을 주입하기 위해 의과대학마다 앞다퉈 인문학 수업을 도입하고 있다. 비비언처럼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지혜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수업이 효과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마치 인문학을 항생제나 해열제처럼 처방하여 정해진 교훈을 주사처럼 주입하는 것은 예비 의사들의 인성 고양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학생들은 무섭고 불안한 초년 시절 앞서가는 부모, 선배, 어른들의 생존 방식을 답습하기 마련이다. 영화 속 비비언 역시 업적을 남긴 저명한 교수였지만 인생의 본이 되는 스승은 아니었다. 한 예로 강의 중 그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는 학생을 자격이 없다며 내쫓았다. 공교롭게도 그 학생의 바로 뒤에는 훗날 그의 담당 전공의인 제이슨이 앉아 있었다. 그는 비비언을 알아보고 학생 시절 그의 수업을 들었다고 말한다. 좋은 성적을 받으려 노력했지만 오히려 시로부터 멀어졌고, 대신 인간보다 암세포에서 경이로움과 감동을 느낀다고 말한다. 어쩌면 인성은 지식과 교육이 만드는 게 아니라,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시류와 맞서 지식을 실천하는 어른의 모습이 만드는 것 아닐까? 타인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 삶에 온정이 주어지지 않는 걸 보면, 잔인하지만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에 우리는 지난 삶의 성적표를 받아들게 된다.
미국 지리학자 이푸 투안은 현대인들은 정체성이 깃든 ‘장소’를 잃어버린 채 생존을 위한 ‘공간’에 갇혀 산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개인의 정체성과 무관하게 기호나 번호로 불려도 어색함이 없는 공간을 ‘비장소’라고 부른다. 도시 속에서 우리는 은행 창구의 131번 고객, 병원의 1204호실 환자, 비행기의 45A 좌석 승객, 시험장의 720번 수험생, 아파트의 503호 입주민 등으로 불리고, 이곳들은 잠시 머물거나 용무를 위해 바쁘게 스쳐 지나가는 ‘비장소’들이다. 반면 ‘장소’란 안식을 위해 정지하는 곳이며, 그곳은 보살핌의 장소이자 내 이야기와 가치가 보존되는 곳이다. 이푸 투안은 사냥과 생존을 위해 늘 이동해야 하는 동물 집단은 이동할 수 없는 취약한 개체들을 낙오시키지만, 인간만은 취약한 이를 위해 공동체가 함께 멈추고 돌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그의 주장도 지금은 어색하게 들린다. 인간을 기호화하는 비장소가 폭주하는 현대를 마르크 오제는 ‘초현대사회’로 새롭게 명명하는데, 초현대사회에서는 독립생활이 어려운 노인과 환자들은 타인의 생존 활동에 방해되지 않도록 병원이나 시설로 격리되어 기호화된다. 핵가족화와 각자도생의 문화 속에서 자유로운 삶도, 돌아갈 안식처도, 돌봐줄 공동체도 없는 현대인은 비비언처럼 병원을 떠나지 못한 채 환자 또는 시험체로 생을 마감한다.
자기 삶을 잃어버리고 병원에서 죽음을 맞은 비비언과 현대인들을 보며 문득 수학자 허준이 미 프린스턴대 교수의 연설이 떠올랐다.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 수상자 허 교수는 모교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엘리트적 성공보다는 삶의 속도를 늦추고 매 순간의 삶의 경험을 온전히 껴안으라는 시적인 메시지를 전파했다. 허 교수는 후배들에게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란다”며 삶의 본질을 잃어가는 현대인의 비극을 답습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어쩌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존 던의 시처럼 피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내 존재의 소멸에 대해 ‘용납할 수 있는’ 지혜를 갖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죽음 앞에서 아쉽지 않고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오늘도 진료실에서 만난 87살 말기 폐암 할머니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앞에 놓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더 오래 살고 싶다’며 눈물을 지었다. 자녀가 모두 외국에 있어 혼자 사는 84살 구강암 할머니는 생활지도사의 부축을 받으면서 밤마다 혼자 죽음을 맞게 될까 무섭다고 했다. 우린 어떡해야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잠시 한번 눈을 감고 나면 우리는 영원히 깨어나리니, 그때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리라. 죽음아, 마침내 죽는 것은 바로 너 자신이다.” 존 던은 무엇을 깨달았던 것일까?
박중철 | 연세암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 없는 삶을 지키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의사이자, 인간 질병의 생물학적 측면을 넘어 사회·문화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인문사회의학 박사이다. 주된 관심사는 젊음과 생동력을 추종하며 삶의 완성인 죽음의 가치를 소외시킨 한국인들이 겪고 있는 ‘생’(生)의 방향 상실이다. 저서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