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선영 국립암센터 표적치료연구과 교수
"암은 왜, 그리고 누구에게서 생기는가?"
지난 22일, 93세로 별세한 조지프 F. 프라우메니 주니어(Joseph F. Fraumeni, Jr.)는 이 물음에 대해 평생 두 가지 방향으로 접근했다. 하나는 '한 가족의 가계도(pedigree)'였고, 다른 하나는 '한 나라의 지도'였다.
그는 1933년 보스턴에서 태어나 하버드 칼리지와 듀크 의대를 거쳐 하버드 보건대학원에서 역학(epidemiology)을 공부했고, 존스홉킨스병원과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에서 수련한 뒤 1962년 미국 공중보건국(United States Public Health Service, USPHS) 장교로 미국 국립암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 NCI)에 합류했다.
환자를 가려 보는 눈과 인구집단을 읽는 시야를 함께 지닌 그의 출발점은 이후 그가 매달린 고위험 집단 연구의 방법론적 바탕이 됐다. 그는 NCI에서 생태연구과장(1966)·환경역학지부장(1975)·역학생물통계 프로그램장(1979)을 거쳐 1995년 암 역학·유전학부(Division of Cancer Epidemiology and Genetics, DCEG)를 창립했고, 2017년 은퇴와 함께 명예 과학자(Scientist Emeritus)로 추대됐다.
그의 이름을 의학 용어로 남긴 발견은 1969년에 나왔다. 그는 프레더릭 P. 리(Frederick P. Li)와 함께 어린 나이에 연부조직 육종이 생긴 환자들의 가계를 추적했다. 이들 가족에서는 폐경 전 유방암·뇌종양 등 여러 악성종양이 유난히 자주 나타났고, 한 명에게 2개 이상 나타나는 경우도 자주 관찰됐다. 두 연구자는 이를 당시 알려진 유전 질환으로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가족성 증후군'으로 제시했다. 1988년 24개 가계로 확장된 연구가 증후군의 임상적 윤곽을 확정했으며 1982년 영국 연구진이 이를 '리-프라우메니 증후군'으로 명명하면서 명칭이 정착했다.
분자적 원인은 그로부터 약 20년 뒤에 밝혀졌다. 많은 산발성 암에서 종양억제유전자인 TP53이 체세포 변이로 기능을 잃는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1990년 데이비드 맬킨(David Malkin) 연구진은 프라우메니도 공저자로 참여한 연구에서 후보 유전자 접근을 통해 고전적 리-프라우메니 증후군 다섯 가계 모두에서 TP53 생식세포 변이를 확인했다. 이 변이들은 p53 단백질의 DNA 결합 부위에 집중돼 있었고, 이는 리-프라우메니 증후군의 분자적 원인을 밝힌 결정적 발견이었다.
한 집안의 반복되는 암 발생을 좇던 임상 관찰은 마침내 TP53이라는 유전자에 닿았다. 그 유전자가 만드는 p53 단백질은 1992년 데이비드 레인(David Lane)이 '유전체의 수호자(guardian of the genome)'라 부른, 암 억제의 핵심 분자였다.
이 발견의 영향은 리-프라우메니 증후군(Li-Fraumeni syndrome)이라는 한 질환의 테두리를 넘어섰다. NCI의 리-프라우메니 코호트(cohort)는 200개가 넘는 가계를 장기간 추적하며, 특히 여성에서 매우 높은 침투도와 다양한 종양 스펙트럼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이 코호트에서 발전한 전신 감시 프로토콜은 고위험 보인자에서 암을 더 일찍 발견하고 생존을 개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더 넓게 보면, 1969년에 그려진 가계도는 암 감수성 유전자를 찾는 연구의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이후 그 목록은 오늘날 120종이 넘는 유전자로 확장했다. 생식세포 패널 검사, 변이 분류, 보인자 연쇄 검사로 이어지는 현대 유전성 암 진료의 흐름 역시 이 출발점에 깊이 빚지고 있다.
가계도가 한 가족 안에서 암을 읽는 방법이었다면, 지도는 인구집단 전체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었다. 1975년 프라우메니가 이끈 NCI 연구진은 미국 전역을 카운티(county) 단위로 쪼개 암 사망률을 지도로 옮긴 '미국 카운티별 암 사망 지도, 1950~1969'를 펴냈다. 주 주(州) 단위 통계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차이가 카운티라는 소지역으로 내려가자 또렷한 지리적 패턴으로 드러났다.
특정 암이 특정 지역에 몰려 있다는 사실은 곧 원인을 추적하는 단서가 됐다. 기술역학이 분석역학의 가설을 길어 올린 대표적 사례였다. 여기서 나온 가설들은 후속 연구로 이어져 여러 발암 요인을 규명하고 인구집단 차원의 암 관리 정책을 세운 데 중요한 근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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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가 남긴 가장 오래갈 유산은 어느 한 발견이 아니라 암 역학을 하나의 학문적 제도로 세운 일일 것이다. 그는 역학과 생식세포 유전학, 생물통계를 한 체계 안에서 결합해야 한다고 봤고,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1995년 NCI 암 역학·유전학부(DCEG)를 창립했다. 이 조직은 분자 역학의 정체성을 구체화하는 기반이 됐고, 이후 대규모 인구집단 기반 전장 유전체 연관분석(GWAS)의 시대를 준비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는 평생 900편이 넘는 논문을 남겼다. 공중보건국 장교로서 그는 해군 소장이자 차관보급 공중보건국 차장의 지위에 올랐고, 1999년 전역했다. 그러나 직함과 수상 이력보다 더 오래 남을 유산은, 세계 곳곳에서 암 역학과 암 유전학을 이어가는 한 세대의 연구자들을 길러낸 일일 것이다.
평생 '조(Joe)'로 불리기를 원했던 그가 1969년에 처음 그린 가계도는 그 한 집안의 기록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생식세포 패널과 보인자 연쇄 검사를 따라 지금도 세계의 진료실과 코호트로 뻗어나가고, 그가 지도 위에서 읽어낸 위험의 지형은 이제 유전체(게놈)라는 좌표 위에 다시 그려진다. 가계도에서 인구집단으로, 그가 평생 오간 두 크기 사이에서 우리는 여전히 암을 읽고 있다. 좋은 스승이 대개 그러하듯, 그는 하나의 답을 남기기보다 질문하는 법과 바라보는 법을 남기고 떠났다.
그의 한평생은 그 자체로 '가계도에서 인구집단으로(from pedigrees to populations)' 나아간 한 학문의 행로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