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털어놓은 20년 지기 친구에게
해법 내놨지만 “공감 못 하네” 돌아와
공감은 사람에 초점…훈련도 가능
요조의 요즘 무사한가요?
※ 5월29일자 ‘조목’님의 사연에 대한 상담을 지난 회에 이어 이번 회에도 이어갑니다.
조목님, 안녕하세요. 조목님이 보내주셨던 사연에 대한 답변이 길어져 이렇게 인사를 두번이나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의 지난 답장은 보셨는지, 이후 한달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부족하게나마 안부를 대신합니다.
조목님의 지난 사연을 미처 읽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요약을 해보았습니다. 40대 미혼 직장인인 조목님은 팀장을 일찍 달 만큼 유능하고, 스스로도 꽤 이성적인 성격이라는 걸 알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옳고 그름이 보이면 단호하게 말하는 스타일. 그게 본인의 자부심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런 성격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피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신다고 하셨습니다. 최근 두가지 일을 말씀해주셨어요. 그중 하나는 팀원이 야간 화상회의 수당을 2배로 요구했을 때 원칙에 따라 조목조목 반박했더니 질렸다는 표정이 돌아왔다는 것이었지요.
저는 이 사례에 대해 두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는, 조목님은 생각만큼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비슷한 사례를 떠올리며 조목님은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이성적인 태도라고 보기 어렵고, 원칙을 중시하는 조목님의 믿음과 달리 진짜 이성적인 사람에게는 원칙을 고집스레 고수하기보다 그것을 수정하거나 폐기할 수 있는 유연함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또 하나는, 감정적인 게 뭐 어떻냐는 말씀이었지요.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감정적인 존재라는 토대 위에서 발휘되는 한 면모일 뿐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이번에는 조목님의 두번째 에피소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20년 지기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한 친구가, 시부모님께 드린 용돈이 본인의 트라우마인 ‘과한 교회 헌금’으로 쓰였다며, 더는 용돈을 안 드리겠다고 화를 내는 일이 있었다고 하셨지요. 조목님은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용돈은 드리는 순간 쓰는 건 그분들의 자유니 사용처를 간섭할 권한은 없다’는 말을 하셨고, 친구는 섭섭해하며 ‘넌 역시 공감을 못 한다’고 답했다고 하셨습니다. 뒤이어 조목님께서는 마음에도 없는 빈말을 하는 건 기만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어주셨지요.
이 사안에 대해 일단 제가 생각하는 답안을 적어 보겠습니다. 조목님은 친구분의 이런 고민 앞에서 옳은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친구분의 감정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했습니다. ‘용돈이 어떻게 쓰이든 그것은 네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보다는 교회 헌금과 관련된 친구의 트라우마를 어루만져주는 게 우선이었어야 했어요.
그러나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조목님이 크게 잘못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20년 지기 친구들과의 모임’이라는 단서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감정에 우선 공감하는 ‘위로의 정석’을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이미 다 아는 사이끼리 굳이’ 하는 마음이랄까요. 그래서 가족이나 오랜 연인,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는 상대의 고민 앞에서 감정의 상처를 조심스레 들여다봐주기보다 바로 해결책부터 내놓곤 하지요. 조목님은 사람을 아끼는 방식이 분명히 있는 분입니다. 무려 20년을 이어온 친구 모임이 있고, 친구의 하소연 앞에서 그 마음을 이해하려 했고, 나름의 답을 정성껏 건네셨으니까요. 아마 친구분도 조목님의 마음을 분명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목님은 친구분의 감정부터 들여다봐주셔야 했습니다. 친구분의 답변에 그 이유가 엿보이거든요. ‘역시 넌 공감 못 하네’. ‘역시’라는 표현으로 보건대, 친구분은 조목님의 그러한 면모를 오랫동안 견뎌 오셨을지도 모르겠어요. 만약 정말 그렇다면 친구분이 지쳐서 조목님을 떠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루라도 빨리 공감 연습을 시작하는 게 좋겠습니다. 진심 어린 공감이라는 것도 학습이나 훈련이 가능하냐고 제게 보내주신 사연의 말미에 물으셨던데, 물론입니다.
먼저 무엇이 옳으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아래에 깔린 ‘감정’을 사실로 인정하는 일을 의식적으로 연습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요. “네가 힘들게 번 돈 시부모님께 용돈으로 매달 드리는 것도 참 대단한데 그 돈이 그렇게 쓰였다는 걸 알았을 때 정말 속상했겠다.” 이 말 어디에도 조목님이 싫어하시는 기만은 없습니다. 즉 공감은 마음에 없는 말이 아니라, 진심을 명제가 아닌 사람에게 맞추는 일입니다.
더 나은 훈련을 위해 추천해드리는 책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작가님의 ‘말하지 않고 말하기’입니다. 이 책은 탈고까지 30여년이 걸렸다고 해요. 저자가 독일 유학 시절 접한 러시아의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의 상호작용론에 기반한 대중적 입문서이면서 소통에 관한 존재론적 성찰서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소통’이라는 주제로 묶기엔 저자가 오랜 기간 조사한 실로 방대한 사례가 담겨 있어 읽으면서 느껴지는 지적 쾌감도 상당하지만 ‘소통에 문제가 많은 소통 전공자’로 자신을 소개하는 책 말미의 내밀한 고백은 조목님에게도 큰 울림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얼마 전 친구와 엠비티아이(MBTI)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이 툭 나온 적이 있습니다. 정말 정말 성숙한 티(T)는 겉으로는 에프(F)처럼 보일 것 같다고요. 아마도 마음이라는 역을 먼저 통과한 다음, 도착하는 이성을 말하는 거겠지요? 조목님의 외롭지 않은 앞날을 응원하겠습니다.
명륜동에서
요조 드림
※당신의 고민을 들려주세요. 요조가 ‘책 처방’을 해드립니다. 제목에 ‘요조’를 달아 txt@hani.co.kr로 보내주세요.
요조 뮤지션·작가
![공감, 옳고 그름보다 ‘감정’을 먼저 보는 것 [.txt]](https://images.supple.kr/?url=https%3A%2F%2Fflexible.img.hani.co.kr%2Fflexible%2Fnormal%2F425%2F454%2Fimgdb%2Foriginal%2F2026%2F0625%2F20260625504285.jpg&suppleWidth=425&suppleHeight=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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