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모닝 인사이트] 韓-EU 안보 협력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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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유럽연합(EU)의 안보 파트너십이 강화되고 있다. 최근 한·EU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제3자의 지원, 특히 북한의 지원을 규탄한다"며 "러시아-북한 간 불법적인 군사협력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한·EU가 민감한 안보 사안에 대해 이례적으로 강한 입장을 표명한 것은 공통의 안보 인식을 바탕으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는 한국과 유럽의 안보 협력이 강화된 배경을 짚어보고 제도화와 전략적 차원의 공조를 어떻게 심화시키고 있는지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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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럽 안보협력의 전략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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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안보협력은 유럽과 인도·태평양의 안보 문제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인식 속에서 강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한·EU 정상회담 공동발표에서도 양측은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유럽의 안보가 긴밀히 연계돼 가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인식 변화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북·러 군사협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24년 10월 북한은 약 1만 6000명 규모의 병력을 러시아에 파견했다. 이들은 러시아의 쿠르스크 지역 탈환 작전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무기 부족에 시달리던 러시아에 포탄 수백만 발과 다연장로켓시스템(MLRS), 자주포, 견인포, 박격포 등 다양한 무기체계도 지원했다. 이는 북한이 한반도에 국한된 안보 변수를 넘어 유럽 안보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로 부상했음을 시사한다.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사무총장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북한의 파병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을 중대하게 고조시키는 행위이자 유럽 안보와 글로벌 평화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북·러 군사협력은 한국 안보에도 직접적인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2024년 6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을 체결하며 양국 관계를 사실상 군사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 가능성까지 열렸다는 점에서 북·러 동맹은 인도·태평양 안보질서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여기에 러시아가 북한의 파병과 무기 지원에 대한 대가로 우주·대공방어 분야는 물론 미사일, 전차, 함정, 드론 등 재래식 전력 현대화에 필요한 기술을 제공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실제로 최근 북한이 실전 배치한 5000톤급 구축함 '최현호'에도 러시아의 기술 지원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체계가 탑재된 것으로 알려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한군이 축적한 실전 경험도 새로운 위협 요인이다. 한국군은 대규모 실전 경험이 제한적인 반면, 북한군은 실제 전장 환경에서 부대를 운용하고 작전을 수행한 경험을 쌓았다. 이러한 경험은 향후 북한군의 전술 교리와 무기체계 발전에 활용될 수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은 북한군 탄도미사일(KN-24)의 정확도가 실전 데이터를 바탕으로 크게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북한군이 현대전의 핵심 무기체계인 드론을 전장에서 운용하고 대응한 경험을 축적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는 북한군의 비대칭 전력 운용 능력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으며, 한국군에는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러 간 밀착을 지켜본 유럽은 북한을 러시아에 준하는 위협으로 인식하고, 이번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이러한 위협 인식을 한국과 공유한 것으로 보인다"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규칙 기반 질서를 수호하는 것이 유럽의 이익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지역 관여는 물론 한국과의 안보협력 필요성도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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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럽 안보협력의 제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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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안보협력은 선언적 협력을 넘어 제도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표적인 출발점은 2024년 체결된 '한·EU 안보·방위 파트너십'이다. 이 파트너십은 해양안보, 사이버안보, 하이브리드 위협, 군축·비확산, 우주안보, 위기관리, 방산, 경제안보, 외국 정보조작 대응 등 15개 안보·방위 분야에서 협력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양측이 안보와 방위 의제를 사안별로 협의하고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제도적 기반으로 평가된다.
후속 조치도 이어지고 있다. 한·EU는 안보·방위대화를 정례화했고, 지난해 제1차 대화에 이어 올해 5월 제2차 한·EU 안보·방위대화를 개최했다. 이 대화에서 양측은 방산, 군축·비확산, 사이버안보, 우주 안보·방위, 해외간섭 및 정보조작 대응 등 주요 분야의 이행 상황과 후속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고위급 대화가 정례화됨에 따라 한·EU 안보협력은 일회성 외교 이벤트를 넘어 안보 정책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조율하는 구조를 갖추게 됐다.
최근 한·EU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승객예약자료(PNR) 전송 협정도 제도화의 중요한 사례로 꼽힌다. PNR은 항공권 예약정보, 여정, 수하물, 동반 여행자 정보 등 항공 이동 데이터를 활용해 테러, 마약, 조직범죄 등 중대범죄와 관련된 위험 인물 및 네트워크를 사전에 탐지하는 제도다. 이는 단순한 여행자 정보 공유를 넘어, 국경 도착 이전 단계에서 위험요인을 선별하는 선제적 안보 인프라로 볼 수 있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 기준이 엄격한 EU가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한국과 PNR 협정을 체결한 것은 한국의 정보보호 체계와 데이터 관리 역량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성과로 해석된다.
비밀정보보호협정 추진도 주목된다. 이는 국가나 국제기구가 기밀정보를 교환할 때 정보의 분류, 보관, 열람, 전달, 폐기 기준을 정하는 협정이다. 한국과 EU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기밀정보 교환을 촉진하고 안보·방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비밀정보보호협정 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협정이 체결될 경우 한·EU는 북·러 군사협력, 사이버안보, 우주안보, 방산·기술 협력 등 민감한 안보 사안에 대해 기밀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된다. 이는 양측의 안보협력이 선언적 공조를 넘어 실질적인 정보 공유와 방위 협력 단계로 진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반 교수는 "나토와의 정보 공유는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안보 상황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군사적 협력의 강도를 높이려는 조치로 볼 수 있다"며 "한국과 나토는 이러한 제도적 인프라를 축적해 왔고, 이를 바탕으로 유라시아 전장은 물론 인도·태평양에서 방산 협력과 현지화, 상호운용성, 기술 협력 등을 도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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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 협력 및 안보 공조 체제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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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럽 안보협력에서 가장 가시적인 분야로는 방위산업이 꼽힌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은 전차, 자주포, 다연장로켓, 탄약, 방공체계 등 재래식 전력을 빠르게 보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유럽 내 방산 역량은 단기간에 폭증한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웠고, 미국산 무기 역시 중동 전쟁 등으로 대기 물량과 조달 일정에 한계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빠른 납기, 대량생산 능력, 가격 경쟁력, 검증된 무기체계, 현지 생산·기술 협력 패키지를 제시하며 유럽 방산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21~2025년 유럽 나토 회원국의 무기 수입에서 미국은 58%로 최대 공급국이었고, 한국은 8.6%로 두 번째 비중을 차지했다.
한국과 나토의 방산협력도 심화되고 있다. 2025년 9월 한·나토 방산협력 실무대화가 출범한 데 이어 올해 5월에는 공동 개발, 공동 생산, 공동 조달, 표준 규격 및 상호운용성 제고 방안 등이 논의됐다. 한국 방산업체들의 현지화 전략도 본격화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폴란드에서 K2 전차 현지 생산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루마니아에 K9 자주포 생산시설을 착공했다.
물론 유럽의 자국 방산 보호주의는 여전히 장벽으로 남아 있다. EU는 1500억 유로 규모의 '유럽안보행동(SAFE)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며, 해당 기금으로 조달되는 무기와 장비에는 65% 이상의 유럽 내 생산 비중 요건이 적용된다. 한국은 캐나다와 같은 특별 우대 조항을 확보하기 위해 협상을 추진했지만, 최종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보호주의를 넘기 위해 현지 생산시설 확대, 나토와의 공동 개발 프로젝트 구성, 부품·정비·기술 협력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한국과 나토의 공조 체제도 전략적 차원에서 강화되고 있다. 나토는 유럽과 인도·태평양의 안보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2022년부터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를 '인도·태평양 파트너 4개국(IP4)'으로 묶어 정상회의에 초청하고 있다. 최근에는 IP4 차원의 협력 범위가 우크라이나 지원, 사이버 방어, 허위정보 대응, 인공지능 협력 등으로 확대됐다. 한국과 나토는 2023년 '개별 맞춤형 파트너십 프로그램(ITPP)'을 체결하고, 사이버안보, 대테러, 군축·비확산, 과학기술, 기후변화 등 11개 분야에서 세부 실행계획을 추진하는 협력 틀도 마련했다.
한국과 나토는 사이버 분야의 공동 훈련도 확대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2021년부터 나토 사이버방어센터(CCDCOE)가 주관하는 'Locked Shields' 사이버 방어훈련에 참여해 왔다. 이 훈련은 나토 회원국과 파트너국이 가상의 사이버 분쟁 상황에서 전력망, 통신망, 금융망, 군사·행정 시스템 등 주요 인프라를 방어하고 기술 및 전략적 대응 역량을 시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올해 4월에도 41개국 4000여 명이 참가했으며, 한국은 47개 기관에서 약 170명이 참여해 헝가리와 연합팀을 구성해 훈련을 수행했다. 이는 한·나토 협력이 전통적 군사협력뿐 아니라 사이버안보와 복합위기 대응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성원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국 없는 유럽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하는 시점에서 한국은 유럽의 안보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역외 파트너로 평가받고 있다"며 "다만 유럽 내 방산 보호주의 등 장애요인이 있는 만큼 단순한 무기 판매를 넘어, 장기적으로 한국과 유럽이 가진 공동의 취약성을 관리하기 위한 다층적인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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