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김태헌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우리가 사랑하고 예뻐하는 모습으로 서울국제도서전을 만들고 싶습니다. 축제를 넘어 저작권 거래가 이뤄지고, 산업의 미래를 논의하는 아시아 대표 도서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태헌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2월 출협 정기총회 임원선거에서 투표에 참여한 351개사 중 총 187개사의 표를 얻어 제52대 회장으로 당선됐다. 오는 24~2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여는 서울국제도서전을 앞둔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출협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대학 졸업 뒤 두산동아 출판사 입사
한빛미디어 창립…출판인회의 회장
2월 출협 총회서 52대 회장에 선출
출협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출판단체로, 1947년 설립돼 출판산업 진흥과 출판의 자유 수호, 공공성 확립 등을 목적으로 활동해왔다. 전임 회장이던 윤철호 사회평론 대표가 3연임을 했고, 9년 만에 회장이 바뀌어 출판계가 신임 회장에게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
“내년이면 출협 설립 80돌이 됩니다. 그동안 출판 단체들이 다양화되었지만 서로 대화하는 과정이 적었습니다. 대화하고 소통하여, 출판계의 화합과 신뢰를 회복하는 일을 0순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1962년 경북 성주에서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부산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뒤 1981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나를 만든 건 팔할이 책”이었다고 할 정도로 책의 중요성을 깊이 새기고 있었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두산동아 출판사에 입사했다. 1990년대 초 활판인쇄에서 매킨토시로 출판·인쇄 환경이 변화할 무렵 “갇혀 있는 느낌”을 받았고 창업을 결심했다. 시대 변화에 발맞춰 동료와 함께 1993년 한빛미디어를 창립한 뒤 한빛비즈 등 계열사를 만들어 정보통신 기술, 실용 분야를 포함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냈다.
출협 회장이 되고 나서 그는 “인공지능(AI) 출판 데이터 공급 인프라와 대학 교재 디지털 플랫폼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출판사와 저작권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산업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보자는 뜻이었다. 그러자 종이책 중심의 출판계에서는 김 회장이 익숙한 디지털 산업에만 관심을 쏟는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 회장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지대넓얕), ‘눈 떠보니 선진국’ 같은 교양서나 사회비평서 베스트셀러도 냈다”고 웃으며 반박했다.
“작년에 이미 출협은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에 인공지능 출판 데이터를 판매해 36억원의 매출을 일으켰습니다. 사유하고 깊이 생각해야 되는 게 책의 책무이고, 거기서 권위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산업적 관점에서는 달라지는 시대에 준비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출판의 본질은 지켜나가야겠지만 인공지능 기술·산업 환경이 발전하면 책의 형태적인 것은 바뀔 겁니다. 늦지 않게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1년부터 2년간 단행본 중심의 출판사들이 모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을 역임했던 때도 김 회장은 자주 출판 문화의 ‘산업’적 측면을 강조했다. 작년엔 쿠팡이 온라인 도서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공급률(소매가격 대비 납품가)을 낮게 후려치거나 ‘성장장려금’을 요구한 것이 밝혀져 ‘갑질’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김 회장은 “고객 접점을 넓히고 지속 가능한 거래 질서를 만들면서 플랫폼과 출판사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쪽으로 나아가고자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도서전을 둘러싼 출판계 내홍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오는 서울국제도서전 기간에는 서울 노들섬과 을지로 일대에서 이른바 ‘대항 도서전’까지 열리게 된다. 어린이책과 그림책 출판사, 작은 출판사들이 대거 탈락했다며 일부 출판사가 따로 도서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참가사 선정 문제는 공간 부족의 탓이 크기 때문에 내년에 부스의 30%를 늘리기로 코엑스 쪽과 대관 협의를 마쳤고, 운영상 공공성, 선정의 투명성 확보도 차차 대화로 기술적 부분을 풀어가려고 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처럼 조직위원회 같은 기구를 구성하는 방안도 있겠고요.”
24~28일 서울국제도서전 놓고 갈등
작은 출판사들이 ‘대항 도서전’ 열어
“운영 공공성·선정 투명성 등 풀어
아시아 대표 도서전 되도록 노력”
김 회장이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가 2024년 설립된 ‘주식회사 서울국제도서전’의 지배구조 논란이다. 2023년 윤석열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가 ‘출협이 도서전 관련 국고보조금 사업 수익금을 누락했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이듬해 도서전 관련 지원금을 끊자 출협은 부랴부랴 서울국제도서전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익금 전액은 책문화 사업에 투자하도록 정관에 명시했지만, 출협 지분 30%를 제외하고 사회평론, 노원문고와 개인 등이 나머지 70%를 보유하게 되면서 과점과 공공성 훼손 우려가 나왔다. 김 회장은 “주주를 다양화, 다각화하고 다양한 출판단체, 강소 출판사도 참여하는 계기로 만들면서 도서전의 발전을 같이 고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컨벤션 산업에서 ‘도시의 핫함’이 중요한데, 서울이 세계적인 도시로 각광받는 지금 전문화된 법인이 행사를 책임지면서 중장기적인 사업을 하는 게 장점인 측면도 있으므로 대의를 갖고 얘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출판계 안에서 오해와 불신이 쌓이면서 불필요한 소모전이 가중되었고, 주변의 권유를 사양하다가 회장에 출마하게 된 측면도 있다고 설명하던 김 회장은 울컥하더니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저는 욕 먹으면서 눈비 맞으면서 가는 거지, 하고 생각합니다. 제 임기 동안 꾸준히 노력하고 소통하고 대화하려고 합니다.”
출협이나 도서전이 대형 출판사 위주로 구성됐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지금은 대형 출판사들이 출판 산업 진흥에 기여하는 바가 오히려 작다며 “큰 출판사가 크게 앞길을 열어주면 작은 출판사도 힘을 받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무엇보다 지금은 ‘텍스트힙’의 유행으로 도서전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언제 거품이 꺼질지 모른다는 절박감도 크다고 했다.
“출판계의 컨센서스를 회복하고 새로운 시장을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출협과 출판계가 함께 멀리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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