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투톱’이 쌓아 올린 9000선, 체감은 한겨울
이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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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가 사상 처음 코스피 9000선이라는 미지의 고지를 밟았다. 정부의 강력한 기업 가치 제고 드라이브와 인공지능(AI)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맞물린 외형적 대호황이다. 하지만 체감 온도는 환호성보다 서늘함에 가깝다. 사상 최고치라는 화려한 외피 속에 감춰진 변동성의 부메랑이 언제든 시장의 뒷덜미를 잡을 수 있다는 경계감 탓이다. 주도주 독식이 쌓아 올린 9000선은 작은 충격에도 사정없이 출렁이는 기형적 구조의 다른 이름이어서다.
현장의 숫자는 지수 상승의 질적 취약성을 고스란히 고발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의 유가증권시장 내 시가총액 비중은 50%를 훌쩍 넘어섰다. 연초 37% 수준이던 비중이 외국인 자금 유입과 함께 비정상적으로 팽창했다. 투톱의 주가 흐름이 코스피 전체를 좌우하다 보니, 지수는 최고치를 경신해도 시장 전반의 체력은 고사 직전이다. 실제로 코스피가 9000선을 뚫어낸 날에도 하락 종목 수가 상승 종목 수를 크게 웃돌았고, 코스닥지수는 약세를 보이며 시장 양극화의 깊은 골을 증명했다. 과거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장세나 바이오 열풍 때도 이 정도의 극단적인 쏠림은 없었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특정 섹터의 독주가 깊어질수록 지수 자체의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편식형 강세장이 대외 변수라는 바람 한 점에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이라는 점은 치명적이다. 주가 상승의 핵심 동력이 자기자본이익률(ROE) 향상 등 기업 전반의 이익 체력 개선이 아니라 지수 편입을 노린 글로벌 패시브 자금 쏠림이었기 때문이다. 대외 악재가 돌출할 때마다 한국 증시가 아시아 경쟁국보다 거칠게 흔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도주 몇 개가 흔들리면 시장 전체가 주저앉는 외화내빈(外華內貧) 꼴이다. 특정 종목 집중도가 심화하면서 외풍에 견디는 맷집은 오히려 후퇴했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포모(FOMO) 증후군에 빠진 개인 투자자들의 신용융자 잔고가 최고치를 경신 중인 점도 시한폭탄이다. 작은 주가 조정에도 반대매매 물량이 쏟아지는 취약한 구조인 탓이다. 증권사들이 신용 이자 장사로 손쉬운 수익을 올리는 사이, 개인 투자자들은 높은 고지 위에서 벼랑 끝 레버리지 게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하반기 외국인의 차익 실현이 강화될 경우 이 레버리지 물량들이 도미노식 하락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단순히 지수 숫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국 나스닥이 거대 빅테크들의 주도로 움직이면서도 시장의 신뢰를 유지하는 건 기형적인 쏠림 속에서도 철저한 주주환원과 압도적인 실적으로 시장의 의구심을 정면 돌파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소수의 독식 체제 속에 80%의 상장사들이 거래대금 고갈로 잊혀가는 착시형 강세장에 머물고 있다. 중·소형주 유통시장은 거래대금 고갈로 신음하고 있고 우량 중견기업들조차 자금 조달에 애를 먹는 기현상이 나오는 실정이다.
체질 개선이 전제되지 않은 지수 부양은 착시가 걷히는 순간 더 큰 진통을 남길 뿐이다. 당국과 거래소는 9000선 돌파라는 성과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특정 섹터에 묶인 자금줄을 시장 전반으로 분산시키고 부실을 솎아내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밸류업 가이드라인의 실효성을 높이고 지배구조 규제 후속 정비도 이어져 소외된 기업들로 자금이 흐르게 유도해야 한다. 화려한 불꽃놀이가 끝난 뒤 찾아올 변동성의 역습을 방어하지 못한다면, 9000선이라는 대기록은 축배가 아닌 독배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시장 전체의 근골격을 튼튼히 하는 내과적 처방을 잊는다면 9000선 고지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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