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에서 야유로, 다시 야유에서 환호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단 90분이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1위를 확정 짓는 한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위협적일 정도로 야유를 퍼부었던 멕시코 팬들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따뜻해졌다.
0-1, 단 한 번의 실수가 패배로 이어진 아쉬운 경기였다. 경기 뒤 만난 멕시코 현지 팬들은 한국의 경기력에 경의를 표했다. 경기 다음 날인 19일(이하 현지시각) 저녁 과달라하라 대성당 광장에서 만난 가브리엘은 “한국이 예상보다 잘했다. 실수가 없었다면 멕시코도 경기를 어렵게 풀어갔을 것”이라며 “남은 대회 한국의 선전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20일 낮 거리에서 만난 호세 콴 역시 “걱정하지 마라. 한국은 남아공과의 다음 경기에서 분명히 이길 것이다. 한국은 다음 단계(32강)로 진출할 실력이 충분하다”고 응원했다.
손흥민의 교체를 의아해하는 팬도 있었다. 손흥민은 멕시코전 후반 12분, 다소 이른 시간에 오현규와 교체됐다. 택시기사 엔리케는 “한국은 왜 손흥민을 일찍 뺀 거냐”고 물으며 “제일 위협적인 공격수가 빠지는 상황이라 궁금했다. 우리(멕시코)로선 다행이었다”고 했다. 실제 경기 당일 손흥민이 교체돼 나오자 멕시코 팬들은 환호하기도 했다.
중요한 경기를 잡은 승자의 여유였을까. 경기 다음 날 마주한 멕시코인들의 모습은 경기 당일(18일)의 험악했던 분위기와는 정반대였다. 승리 다음 날 광장에 모인 수백 명의 현지인은 지나가는 한국 기자들에게 함께 춤을 추자며 ‘코레아 코레아’를 외쳤고, 대형 스피커에서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초록 유니폼을 입고 경기 내내 멕시코에는 환호를, 한국에는 거센 야유를 퍼부었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안방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과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소음은 결국 한국의 치명적인 실수를 낳기도 했다. 압도적인 응원 속에서 한국은 후반 5분 골키퍼 김승규와 수비수 이기혁이 실수하면서 선제골을 내줬다. 공중볼 처리 과정에서 사인이 제대로 맞지 않은 탓이었다. “내 콜이 (이)기혁이에게 정확히 안 들렸을 수도 있다”는 김승규의 말처럼, 안방 팬들의 기세에 밀려 경기를 내준 한국은 1승1패, 조 2위(승점 3)로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처지가 됐다. 월드컵 ‘2차전 무승 징크스’(4무8패)도 깨지 못했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고, 진 건 진 거지만 아직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다. 한국은 오는 25일(한국시각) 멕시코 몬테레이 경기장에서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승점 1(무승부 이상)만 따내면 자력으로 조 2위로 32강에 진출한다. 한국이 남아공에 지고, 멕시코가 체코에 지면 조 4위로 32강 꿈이 사라진다. “몬테레이는 과달라하라보다 한국 교민이 많고, 멕시코는 워낙 한국을 좋아하니 여기보다 더 안방 같을 것”이라는 이창선 과달라하라 한인회장의 말처럼 홍명보호의 꽃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과달라하라·사포판/손현수 기자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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