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21일(현지시각) 스위스에서 후속 기술협상을 개최하는 가운데, 이란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을 이유로 호르무즈해협 폐쇄를 발표하고 미국이 이를 부인하면서 양쪽이 치열한 장외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미국은 실제 해협 봉쇄에 해당하는 군사적 움직임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일부 선박이 항로를 돌리거나 해협 주변에서 멈춘 것으로 파악돼, 이란의 위협이 현장에 일정한 혼선을 낳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란 하탐 알안비야 중앙군사본부는 20일 호르무즈해협의 선박 통행을 차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의 군사작전 중단’을 명시한 미·이란 종전 양해각서(MOU) 제1조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며, 미국이 이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란 쪽은 이번 조처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휴전 합의 위반에 대한 “첫 단계”라며, 공격이 계속될 경우 추가 조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선언이 실제 물리적 차단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 대변인 팀 호킨스 해군 대령은 로이터통신 등에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을 통제하지 못한다”며 “선박 통항은 계속되고 있고, 미군은 이런 상황이 유지되도록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부사령부는 이날 상선 55척이 해협을 통과해 1700만 배럴 이상의 원유와 대량 화물을 세계 시장으로 수송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비시는 해상추적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일부 유조선이 정상적으로 해협을 통과한 반면 최소 5척의 선박이 해협 주변에서 갑작스럽게 180도 방향을 돌리거나 멈춰 선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호르무즈 압박에 맞서 미국도 통행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휴전 기간인 60일 동안 호르무즈해협에는 통행료가 없을 것이며, 60일이 지난 뒤에도 통행료는 없을 것”이라고 썼다. 다만 그는 “합의가 완료되지 않을 경우, 미국이 중동 국가들에 대한 ‘수호천사’ 역할의 대가로 과거·현재·미래 비용을 보전받기 위해 미국에 의해, 미국을 위해 부과되는 경우는 예외”라고 밝혔다. 이란의 핵심 레버리지인 해협 통제권을 무력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장외 기싸움이 거센 가운데 양쪽은 21일 스위스 뷔르겐슈토크 대면 협상 준비를 마쳤다. 이란 쪽에서는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과 아바스 아라그치 외장관이 도착했고,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 카타르의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총리도 스위스에 합류한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 라파엘 그로시도 스위스에 머물며 이란 핵 프로그램 협상 일부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고 한 소식통이 시비에스(CBS) 뉴스에 전했다.
미국 협상단을 이끄는 제이디 밴스 부통령은 이날 스위스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기자들과 만나 “스위스에 하루나 이틀 정도만 체류하며 최고위급 정치적 협상 구조를 확립할 것”이라며 “이후에는 실무진이 현장에 남아 기술적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협상에서 핵 문제와 레바논 휴전 문제의 진전을 이루는 것이 가장 큰 두 가지 목표”라고 강조했다. 밴스 부통령은 레바논 전선이 협상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질문에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전체 팀이 레바논 상황을 적극적으로 관리해왔다”며 “실제 상황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가 쏘면 누군가가 대응하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가 있다”며 “충분히 오래 사격을 멈춰 휴전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모두 안전하고 안보가 보장되도록 계속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 국무부는 23~25일 이스라엘과 레바논 대표들이 워싱턴에서 협상을 가진다고 밝혔다.
막후에서는 이란을 달래기 위한 재정적 인센티브 논의도 진행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시엔엔(CNN) 따르면, 미국과 카타르는 카타르 은행에 묶여 있는 이란의 동결 자금 60억 달러(약 9조 1000억원)를 인도적 목적(식량 및 의약품 구매)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