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바깥의 마음 l 현호정 작가
삼대가 함께 산 우리집, 늘 시끌벅적했지만
서울 원룸촌의 내 방은 천국처럼 조용했다
종잇장 같은 벽을 뚫고 온갖 소리 들렸지만
적당한 무시와 존중 속에서 ‘평화’를 배웠다
서울 바깥에서 서울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오직 서울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기대와 흠모, 동경, 흥미를 가진 이가 있는가 하면 질투와 분노, 절망을 느끼는 이도 있다. 서울 바깥에 사는 또는 살아본 적 있는 여섯명의 작가가 서울 바깥의 마음을 정확히 응시한다.
처음 하룻밤 자고 난 서울 방에서, 나는 낯선 새소리를 들었다. 꿈이겠거니 넘겨짚은 건 그 지저귐이 너무 고와서였다. 현실은 이상의 그림자일 뿐이라던가? 이렇게 환하고 밝은 노래가 다른 무언가의 그림자일 리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의 정신은 찬란함 앞에서 명징해지는 법. 차차 잠에서 깨기 시작한 나는 이제 곧 희미해질 새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붙잡으려 애썼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천국의 새소리는 내 머릿속이 갤수록 도리어 가까워지는 거였다.
당시 나는 스물두살이었고 일주일 내내 신화를 공부하는 문학도였음을 먼저 밝혀 두어야 하겠다. 그래야 그 신이한 새소리가 내게 불러일으킨 격랑, 환희, 예감, 공포 같은 것들이 여러분에게 더 잘 설명될 테니 말이다. 그때 그 자취방에서 나는 내 삶과 세계 전체의 불가사의한 비밀을 조우했다고 생각했다. ‘이 새소리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완벽했으니까. 노래는 멈추거나 잦아드는 법도 없었다. 점점 크게, 점점 가까이…. 마침내 천국의 새가 내 머리맡까지 다가왔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눈을 번쩍 뜬 나는 평소에 한심해 마지않던 옛이야기 속 욕심쟁이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말았다. 재빨리 팔을 뻗은 거였다. 손아귀에 힘을 주어 그 새를 허겁지겁 낚아챈 것이었다.
숨을 몰아쉬며 손을 펼쳤다. 천천히, 천국의 새소리가 여러 갈래로 찢어지고 있었다. 이제 그것은 모두에게 친숙한 몇 종의 새소리와 몇가지 악기 선율의 합이었다. 손바닥에서 빠르고 일정한 박동이 느껴졌다. 쉬이 멈추지 않을 것 같은 그 고집스러운 심장의 주인은 딱딱하고 서늘하고 미끄러웠다. 삼성 갤럭시에스3. 재생 중이던 알람 음악의 제목은 ‘워크 인 더 포리스트’(Walk in the forest)였다.
알람을 듣고 잠에서 깨어나는 게 처음이었다. 그 전까지는 늘 잠에서 깬 채로 알람을 들었으니까. 난 시끌시끌하게 컸다. 가족이 많았고, 동네도 서울의 원룸촌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주변은 노인과 아이까지 삼대가 한집에 사는 가정이 대다수였다. 아기들은 너무 늦게까지 울었고, 노인들은 무슨 일이든 간에 너무 일찍 시작했다. 중간에 낀 사람들은 잠에서 깬 채 그 소리들 사이에 자기 아침 알람 소리가 섞여 들기를 기다리는 식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알람이 울릴 때쯤이면 동네는 더 많은 소리로 빽빽했는데, 까치나 참새를 제외한 다양한 텃새와 철새의 소리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진짜 새들의 노래는 자꾸 멈추며 이어진다. 살아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 틈에서 내 천국의 새는 본의 아니게 잘 들리지도 않는 노래를 목청껏 부르며 득음에 득음만 거듭하다가 그때 그 방에서 처음으로 실력을 펼쳐 보인 것이었다.
그래, 그 방은 정말 천국처럼 조용했거든. 새벽에만 조용한 것도 아니었다. 점심시간에도, 퇴근 시간에도, 술자리가 이어지기 마련인 적당한 밤에도 조용했다. 내가 내 숨소리를 듣다 듣다 가끔씩은 숨을 쉬는 박자를 어겨 과호흡의 문턱에서 할딱이기도 했을 만큼 적막했다.
거기서 2년쯤 살았을 때인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오는데 복도에서 신음이 들렸다. 아파서 앓는 소린 아니었고, 옆방에서 즐거운 일을 벌이는 듯했다. 나는 피곤하고 기분도 안 좋은 상태였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내 방으로 들어갔는데, 결코 무던하지 않은 스스로의 성미를 고려할 때 이 무신경한 지나침이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음은 방 안에서 더욱 잘 들렸고, 이 소리가 내게 퍽 익숙하다는 사실까지 깨닫자 의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깨달음이 찾아왔다. 내가 ‘객관적으로’ 조용한 방에서 지내온 것은 아니라는 자각이었다.
아주 단순히 말해 나는 이 방에서 들어오는 소리들을, 가상의 스피커 전원을 뽑듯 꺼 버릴 수 있었다. 스스로 그렇게 하고 있는 줄도 모른 채로 그렇게 했다. 더 자세히 설명해 볼까. 그 방에 살면서 나는 사실 많은 소리를 들었다. 애초에 방음이 잘될 리 없는 엉성한 건물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청년들이 다닥다닥 붙어 살았고. 음악 소리, 큰 음성은 물론이고 각자 집에서 숟가락 놓는 소리며 밀폐 용기의 뚜껑을 딱딱 눌러 닫는 소리에 쿠쿠가 맛있는 밥을 완성했으니 밥을 잘 저어주시란 소리까지, 전에 살던 동네처럼 왁자하진 않아도 달그락달그락 섭섭지 않았다. 다만 내가 여기서 들리는 모든 소리를 무시해 왔다. 처음 상경한 그날부터.
철저한 무시. 나는 인정해야 했다. 나는 ‘듣지 않아도 된다’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들의 삶은 내 삶에 연결되거나 포함되지 않았다. 왜? 곧장 생각나는 계기는 없었다. 이사 오던 첫날을 떠올려 볼까. 엘리베이터 없는 5층 방으로 무거운 세간살이를 옮기는 동안 계단에서 많은 청년을 마주쳤다. 혹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아 서운했는가 하면 절대 아니었다. 애초에 누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묘하게 느낀 지점은 따로 있었는데, 그 누구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거였다. 꼭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는 것 같았다. 단순히 시각의 영역으로 한정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거기 없는 것 같았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내가 여기 사는 줄 모른다. 그들은 여기 사는 사람이 나라는 걸 모른다. 그들은 나를 호명할 수 없는데, 내 이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루 내내 뭐라고 떠들든, 그중 한 마디도 나를 향한 것이거나 나에 관한 것일 리 없다.’ 나는 이제 내가 “나”이기도 하고 “여기 사는 사람들”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제 피차 마찬가지인 거였다.
방을 뺄 때쯤에는 나도 머리가 좀 커졌다.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사람은 청각 처리 문제를 겪는다는 연구도 접했고, 종이 벽으로 공간을 구분하는 문화권에서 거주자들이 심리적 벽을 세워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내 경우가 그런 사례로 다 설명되는 건 아니라고 느꼈다. 내 무의식적 고요를 뚫고 들어오는 큰 소리를 들을 때 특히 차이를 실감했다. 적극적으로, 거의 발버둥을 치듯이 못 들은 척하는 내 마음은 이타심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는 게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그들이 우는 소리나 정신 나간 것처럼 웃고 떠드는 소리를 잘못 전송된 알몸 사진처럼 여겼다. 사진도 아니었다. 그들의 맨 팔과 다리가 내 종잇장 같은 벽을 뚫고 들어왔다 나가는 듯했다. 너무 자주 눈앞에 들이밀어지는 이 몸들은 확실히 가짜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 우리는 여기서 진짜 살고 있는 게 아니어야 했다. 우리의 삶은 여기 진정으로 속한 게 아니었다. 당신이 정말로 여기에, 당신도 정말로 여기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게 당신에게 실례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이사 오던 날 계단참에 선 나를 당신들이 보지 않은 이유도 같은 것이리라고.
그러나 내가 그 시절 우리의 삶을 마냥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연극반이었다는 것을 언급해 두면 설명이 더 쉬울 것 같다. 몇가지 질문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니까, 진짜는 진짜 더 좋은가? 달리 말해 실존하는 대상, 현존하는 감각, 고유하고 유구한 시공간만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걸까?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가짜에, 그림자에, 어둠 속 환상에 매료되는가?
드문드문 여기저기 있는 듯 없는 듯 고였다 사라지는 나날과 관계만이 줄 수 있는 연대가 있다. 나는 그 시절 우리를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이 무대에서 가면을 쓰고 만났다. 원한다면 누구의 얼굴도 모른 채로 극장을 나설 수 있었다. 외로움과 자유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인지 나는 서울에서 배웠다. 무시와 존중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기만과 진심이 어울려 이루는 화음을 알았다.
그 잠깐의 부재(不在) 체험은 어떤 면에서 천국보다 나았다. 그러나 그 체험은 지속되어 삶이 될 수 없었다. 음악가 앨빈 루시에가 1969년 녹음한 ‘아임 시팅 인 어 룸’(I’m Sitting in a Room)은 나의 고립이 그쳐야만 했던 이유를 보여(들려) 준다. 이 음향 작업은 루시에가 “아임 시팅 인 어 룸”으로 시작하는 짧은 말을 녹음하고, 녹음한 소리를 재생하고, 그것을 재생해 다시 녹음하는 행위의 반복으로 구성된다. 이 과정을 거치며 루시에의 목소리는 차츰 분해되어 방 안에 녹아든다. 말소리의 말소리다운 면모는 사라지고 말이 방에 부딪혀 나는 방의 소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루시에는 말한다.
“나는 당신이 지금 있는 곳과 다른 방에 앉아 있다. 나는 나의 말하는 목소리를 녹음하고 있으며, 그것을 다시 방에서 재생할 것이다. 다시, 또다시, 이 방의 공명 주파수가 강화되어 나의 말소리의 그 어떤 흔적도, 아마 리듬을 제외하고 모두 파괴될 때까지. 그러면 당신이 듣게 될 것은 말소리에 의해 발화된, 이 방의 자연적인 공명 주파수가 될 것이다. 나는 이 행위를 물리적 사실의 증명이라기보다, 나의 말소리의 불규칙함을 매끄럽게 만드는 방법으로서 인식한다.”(장한길의 ‘흩날리는 말, 소리의 삶’, 세마 코랄, 2023년 1월9일치에서 재인용)
이에 관해 사운드 작가이자 평론가인 장한길은 “공명 주파수는 비단 소리를 발생하는 개체(사람, 동물, 악기 등)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울리는 모든 공간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하며 “방의 고유한 소리적 특성이 점점 지배적으로 드러나고, 루시에의 목소리가 가진 특성은 쪼그라들게 된다는 뜻이”라 설명한다. 하여, 작업의 말미에 당도하면 관객이 들을 수 있는 소리에서 “그의 말소리 특징은 거의 다 사라지고 방, 즉, 환경의 특징만이 남아 울린다”라는 것이다.(장한길)
복제한 쥐를 재복제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난다. 58번째 세대의 쥐는 디엔에이(DNA)에 축적된 돌연변이를 견디지 못하고 태어난 다음 날 죽는다.(칼리 카셀라의 ‘복제의 막다른 길…20년 연구가 밝힌 유전 복제의 한계’, 네이처, 2026년 3월25일치 내용)
개인주의, 무책임, 고립과 단절 같은 것들이 대도시 인류에게 독으로 작용하는 양상은 바로 이러한 모습이리라. “점점 지배적으로 드러나”는 집, 선명해지는 서울과 반비례하여 우리 개개인은 “쪼그라들게” 될 것이고, 반복되는 나날이 특정 지점에 이르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약과 독은 본디 같은 것이라 했던가. 그때 내게 서울이 준 독은 분명 약으로 작용했다. 세탁기도 개수대도 없는, 화장실은 있어도 세면대가 없던 그 방에서 분명 나는 평화의 의미를 알았다. <끝>
현호정 작가
현호정 작가 l 소설가, 연극인. 제1회 박지리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한 방울의 내가’, 장편소설 ‘단명소녀 투쟁기’ ‘고고의 구멍’, 단편소설 ‘삼색도’ 등을 썼다. 공연예술 콜렉티브 '안티무민클럽 AM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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