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 활동가의 죽음
한겨레
[나는 역사다] 리건 러셀 (1955~2020)
토론을 즐기는 집에서 자랐다. 책을 많이 읽었다. 오랫동안 캐나다에서 모델로 활동했는데, 모피 옷 모델은 하지 않았다. 동물권 운동가였기 때문이다. 백화점에 찾아가 모피 반대 시위를 하다가 아버지와 함께 체포된 일도.
번식장, 공연장, 도축장을 찾아다니며 비폭력 시민불복종 운동을 했다. 1979년부터 열한번 체포됐지만 굽히지 않았다. 여성 참정권 운동과 노예제 폐지 운동을 초들며 “어리석은 법을 어기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했다.
동물의 권리만 지지하지 않았다. 여성 운동, 원주민 운동, 흑인 운동, 성소수자 운동에 연대해 목소리를 냈다. 동물 착취가 인종차별과 성차별과 한 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리건 러셀과 동료들을 ‘교차적 비건’이라 일렀다.
2010년대부터 도축장을 찾아가 ‘비질 운동’을 했다. 돼지를 가득 실은 트럭이 도축장에 도착할 때, 활동가들이 트럭을 잠시 세운 다음 도살 직전 돼지에게 마지막 한 모금의 물을 먹였다. 도축을 멈추지는 못하지만, 도축 현장을 외면하지 않고 ‘증인’이 되겠다는 다짐. 돼지들은 곧 가스를 마시고 기절한 뒤 매달린 채 피를 빼고 토막토막 잘려 나간다고 했다.
운동은 쉽지 않았다. 러셀의 동료 어니타 크라인츠가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다. 반면 농업하는 사람들은 먹고사는 일을 걱정했다. 2020년 6월에 농장의 실태를 폭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 통과됐다. 트럭을 가로막는 일도 9월부터 불법이 될 예정이었다.
6월18일 밤, “다음 세대에게 횃불을 넘길 때인가”라고 남편이 말했다. 하지만 다음날 19일 아침, 러셀과 동료들은 도축장을 찾았다. 트럭을 멈추고 돼지에게 물을 주었다. 운전자에게 인사를 하려고 러셀이 길로 들어섰을 때, 트럭이 달리기 시작하며 그를 치었다. 러셀은 목숨을 잃었다.
“고의가 아닌 부주의 운전”이라고 정부는 판단했다. 러셀이 숨진 뒤 그를 추모하는 시위대와 조롱하는 사람들이 도축장 앞 거리에서 맞섰다. 논쟁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김태권 만화가
조회 0·스크랩 0·공유 0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