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나 | 교사·‘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저자
“요즘 아이들이 그런 거 하기 싫어할 텐데, 잘하네요?”
내가 ‘실상사 작은학교’ 아이들과 도보 여행을 하거나 농사일을 할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나도 가장 놀랍고 궁금한 지점이다. 아이들이 몸으로 하는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대부분 자발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공립학교에 있었다면 “밭에 풀을 매보자”고 했을 때 “그런 걸 왜 해요?” 하거나 누군가 역할을 맡아야 해서 제안하면 “왜 저만 시키세요?”라는 반응이 나왔을 터였다. 나는 미리 수업을 준비해줄 학생 도우미를 매 학기 모았는데, 꼭 이런 말을 덧붙였다. “생기부(생활기록부)의 과목별 특기사항에 적어드립니다.” 이런 외적 보상이 없으면 전체 학급을 위한 일을 굳이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실상사 작은학교는 이런 점에서 보면 꽤 다른 문화가 스며 있다. 선택 수업을 정할 때 인기 있는 수업이 있기 마련인데, 어느 정도 적정 인원이 채워지면 아이들은 듣고 싶어도 그 수업에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는다. 전체를 위해 흔쾌히 양보하는 것이다. 요즘 같은 시기엔 새벽에 모땜(모내기 뒤 모가 빠진 자리에 모를 다시 심는 일)이나 피사리(논의 피를 뽑는 일)를 하는데, 올해는 매일 10여명의 아이들이 나선다. 모두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일이다. 작년 김장할 때 일이다. 절인 배추 뒤집기할 사람을 모았다. 잠도 못 자고 추운 겨울 한밤중에 나와야 하는 일인데, 책임감 있는 고학년들 네다섯이 자원했다. 그러자 저학년들도 두세명 손을 들었다. 얼음장 같은 소금물에 손을 담그고 무거운 배추를 뒤집으며 아이들은 힘들다고 하기는커녕 신나 했다. 심지어 눈까지 내려서 낭만이 있다며 노래를 부르고 춤까지 췄다. 도대체 이런 문화는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우선 개별 학생들을 고유한 특성대로 수용하고 존중하는 풍토가 있다. 집단 안에 함몰되어 전체로 다루어지지 않고 한명 한명의 욕구가 표현되고 개성이 드러난다. 소통 방식으로 매일 둥그렇게 둘러앉아 누구나 자유로이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는 서클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이 문화 안에서 학생들은 전체와 소통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고 안전함을 느낀다.
또한 학교 규모가 작고 가족, 마을, 실상사 인드라망 공동체가 연결되어 있어서 학생의 삶도 자연스럽게 엮이게 된다. 생활의 모든 장면에서 연결되어 있으니 ‘익명’ 속에 숨을 수 없고,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나만의 사적인 생활이 적고 내 말과 행동이 항시 노출된다. 도시에서 봤을 때는 괴담일 수 있지만 성장기의 학생들에게는 연결성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서로 비교하는 학력평가가 없다는 점이다. 수학 문제를 잘 풀고, 영어 단어를 많이 알면 그 부분은 인정을 받지만, 그 외에 농구도 하고 농사일도 하며 자연 속에서 체험도 한다. 다양한 학습활동을 개개인이 다채롭게 할 뿐이지 일등이나 꼴등은 없다. 우열이 없으니 외적 보상을 위한 경쟁도 없다. 물론 ‘멋지다’는 소리를 듣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수학 문제를 잘 풀어서가 아니라 힘든 일을 할 때 솔선수범하거나 모임을 주도하거나, 자기 주변과 사람들을 살뜰하게 챙겨서 얻은 세평이다. ‘멋지다’는 자연스러운 감탄사이지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평가가 아니다. 게다가 ‘멋지다’는 말에 아무 관심 없이 자기 나름의 삶을 즐기는 ‘멋진’ 친구들이 더 많다.
당연히 이곳도 아이들 간에 혹은 아이들 내면에서, 또 가정 안에서 여러 갈등과 어려움을 겪는다. 갖가지 이유로 중도에 떠난 학생들도 많다. 하지만 ‘먼저 마음을 내는 사람’을 길러내는 자발성 교육은 가장 밑바탕에 있는 가치이자 철학이다. 미국의 교육심리학자인 앨피 콘은 “아이들은 지시를 따름으로써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을 내림으로써 좋은 결정을 내리는 법을 배운다”고 했다. 누구와 비교해서 열등하지 않은 자신을 믿고, 안전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줄지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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