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 현대 미술사의 가장 찬란한 색채 하나가 사라졌다.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며 ‘살아있는 현대 미술의 전설’로 불리던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향년 88세로 타계했다. 그의 홍보 담당자는 호크니가 89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런던 자택에서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고 전했다.
호크니의 타계는 단순히 한 거장의 죽음을 넘어, 반세기 넘게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탐구해 온 거대한 시각적 실험실의 폐막을 의미한다. 호크니의 70년 화업은 회화, 사진, 판화, 그리고 디지털 매체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형식적 실험과 시선의 확장으로 점철된 여정이었다.
현대미술의 역사는 종종 새로운 형식과 전위적인 개념의 탄생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어떤 예술가는 단순히 형식을 전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세계를 지각하고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는 바로 그러한 정점에서 시선의 혁명을 이끈 작가였다. 그의 반세기 넘는 화업은 ‘우리는 어떻게 보며, 어떻게 세계를 경험하는가’라는 시각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현상학적 탐구의 과정이었다.
영국 요크셔 출신의 호크니는 1960년대 런던 팝아트의 기수로 첫발을 내딛었으나, 그의 예술적 지평이 본격적으로 확장된 계기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의 이주였다.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태양과 투명한 대기, 그리고 수영장 수면에 부딪혀 분절되는 빛의 리듬은 그의 캔버스를 완전히 뒤흔들었다. 대표작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은 물방울이 튀어 오르는 찰나의 역동성을 지극히 정적인 화면에 박제함으로써, 시간의 일시성과 현대인의 고독한 풍경을 동시에 포착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광고 등 대중문화의 영향을 엿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호크니의 진정한 혁신은 감각적인 색채나 대중적 이미지에 머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보는 행위’ 그 자체를 향해 있었다. 그는 서구 회화가 르네상스 이후 수백 년간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여 온 단일 원근법과 고정된 시점에 의문을 제기했다.
"인간은 카메라 렌즈처럼 하나의 고정된 초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걷고, 움직이며, 기억과 감각을 혼합해 여러 시점을 동시에 경험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극적으로 시각화한 것이 1980년대의 포토콜라주(Photo-collages) 연작이다. 수백 장의 사진을 겹치고 재구성한 이 작업은 렌즈의 기계적 한계를 넘어, 인간의 움직이는 시각을 회화적으로 재현하려는 대담한 시도였다. 이 다중 시점의 실험은 이후 그의 대형 풍경화로 확장되며, 관람객이 평면의 프레임 속에 갇히는 대신 화면 속 공간을 실제로 거니는 듯한 공감각적 신체 경험을 불어넣었다.
호크니를 규정하는 또 다른 축은 지치지 않는 ‘예술적 호기심’이다. 그는 팩스, 복사기, 폴라로이드 등 당대의 새로운 기술 매체를 실험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특히 70대 고령의 나이에 접어든 이후에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적극적인 회화의 도구로 끌어들였다. 수많은 작가들이 디지털 기술을 가상현실의 구현이나 복제의 수단으로 소비할 때, 호크니는 도리어 이를 가장 순수한 회화적 표현을 실현할 ‘빛의 캔버스’로 재해석했다.
그 실험의 정점이 바로 디지털 프리스(Digital Frieze) 형식의 대작 ‘노르망디의 1년(A Year in Normandie)’이다. 프랑스 노르망디에 정착한 그는 팬데믹이라는 고립의 시간 동안 매일 부단히 변화하는 정원의 풍경을 아이패드로 기록했다. 그리고 이 수백 점의 드로잉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거대한 파노라마 회화를 완성해 냈다.
이 작품은 서구의 전통적인 풍경화 맥락을 넘어 두 가지 거대한 시각 매체적 전통을 관통한다. 하나는 약 70미터 길이의 중세 자수 유물인 바이외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가 보여주는 서사적 시간의 흐름이며, 다른 하나는 관람자의 이동에 따라 시공간이 가변적으로 전개되는 동아시아 두루마리 회화(Horizontal Scroll)의 시각 구조다.
서구 원근법이 관람객의 눈을 하나의 소실점에 묶어둔다면, 두루마리 회화는 발걸음에 맞춰 새로운 풍경을 연속적으로 펼쳐낸다. 호크니는 이 동양적 공간 개념을 디지털 픽셀의 발광성(Luminescence)과 결합하여 현대적으로 재창조했다. 겨울의 서리에서 봄의 개화, 여름의 녹음과 가을의 단풍으로 이어지는 사계의 리듬은 스크린 위에서 하나의 거대한 시간의 강이 되어 흐른다. 관람객은 이제 작품을 ‘바라보는’ 주체에 머물지 않고, 벽면을 따라 걸으며 계절의 궤적을 직접 ‘통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데이비드 호크니가 평생을 바쳐 쫓았던 예술적 도정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는 자연을 단순히 재현한 화가가 아니라, 우리의 시선을 해방시키고 지각의 경계를 확장한 탐험가였다. 캘리포니아 수영장의 일렁이는 물결에서도, 요크셔의 거친 숲길에서도, 그리고 노르망디의 평범한 사계절 속에서도 그는 매 순간 반짝이는 존재의 환희를 길어 올렸다.
세상을 바라보는 행위 자체가 삶의 가장 큰 기쁨이라 믿었던 예술가. 호크니의 유산은 그가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세상을 어떻게 사랑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는가’에 대한 위대한 기록이다. 그가 화면 위에 남겨둔 찬란한 색채와 빛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살아 있다는 것의 멈추지 않는 경이로움을 끊임없이 일깨울 것이다.
“세상을 Thrilling(스릴 넘치고), Mysterious(신비롭고), Beautiful(아름답게) 바라본다면, 당신은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이다.”
호크니는 예술 시장에서의 상업적 성공(2018년 ‘예술가의 초상’ 약 1019억 원 낙찰로 당시 생존 작가 최고가 기록) 뒤에도 그저 그리는 행위 자체가 주는 환희에만 몰두했던 순수한 회화주의자였다.
왕실의 기사 작위 제안을 거절하고, 오직 화면 위의 시각적 진실만을 좇았던 거장. 그가 남긴 수많은 ‘첨벙’의 잔상은 현대 미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명징한 빛으로 우리 곁에 영원히 머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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