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 미식 여행지 샤르퀴트리숍
가축육종 전문가 박화춘 박사
영국 품종 개량해 버크셔K 탄생
차남이 키운 돼지, 장남이 가공
저염도 샤르퀴트리 수출도 꿈꿔
짭조름한 맛이 식탁을 점령했다. 창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은 접시 위 붉은색을 더 빨갛게 보이게 했다. 옆에 있는 와인 한잔이 기분을 들뜨게 했다. 소시지, 장봉(잠봉), 살라미, 초리소 등이 접시에 담겼다. 이것들을 합쳐 ‘샤르퀴트리’(charcuterie·샤큐테리·샤퀴테리)라고 한다. 프랑스어인 샤르퀴트리는 돼지, 소, 오리, 토끼, 염소 등 고기와 부속물을 염장해 말리거나 훈연하는 가공품을 통칭하는 식품 용어다. 주로 돼지고기가 가공 대상이다. 냉동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 애용된 조리법이다. 특유의 과정을 거친 고기 맛이 일품이라 지금도 사용된다. 서양에서 시작된 샤르퀴트리 식음이 이젠 우리에게도 친숙한 음식 문화가 됐다. 우리네 김치처럼 서양인들 식탁에 자주 오르는 먹거리가 샤르퀴트리다.
지리산 아래 전북 남원시 운봉읍. 이곳에 자리한 ‘더찹샵’은 샤르퀴트리를 와인과 함께 맛볼 수 있는 미식 여행지다. 2012년께 열었다. 수입에만 의존했던 샤르퀴트리를 우리 손으로 생산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농업법인 조아가 운영하는 공간이다. 조아의 박자연(34) 대표는 “(육종 전문가인) 아버지가 많이 알려졌지만, 요즘 저희는 ‘동생이 키운 돼지, 형이 가공한다’란 콘셉트를 내세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과 동생 정원(29)씨의 이름을 붙여 “자연 정원”이라고 농담처럼 소개했다.
박 대표의 부친은 박화춘(63) 박사다. 가축육종학으로 석박사를 딴 그는 농촌진흥청 축산연구소 등 안정적인 직장에서 근무하다 2000년대 초 고향 남원으로 귀촌했다. 이후 지리산 자락 해발 500m 청정 고원에서 돼지 품종 개량에 매달렸다. 영국 품종 흑돼지 버크셔를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개량하는 게 목표였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집념이 탄생시킨 돼지 품종이 ‘버크셔케이(K)’다. 농장 이름은 ‘다산육종’. 버크셔케이는 이젠 제법 알려졌다. 미국 뉴욕 등 여러 나라에 진출해 세계인을 사로잡은 식당 ‘옥동식’의 돼지곰탕 재료도 버크셔케이다. 박 대표의 동생 정원씨는 청년 농부다. 부친의 양돈업에 함께한 지 8년째다. 대학에서 양돈학을 전공했다. 전공을 정하기 전에 일본 미에현의 ‘모쿠모쿠 테마파크’를 방문하고 진로를 확정했다. 마을 전체가 돼지 사육을 중심에 두고 체험 농가 등을 꾸리며 관광객을 맞는 풍경에 반했다.
“버크셔는 영국 품종인데 미국 시장이 더 커요. 아시아에선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들여왔고요. 예전에 지리산에 할아버지들이 ‘빠크셔’라고 부른 돼지가 있었는데 그게 이 품종이죠. (아버지가) 미국의 버크셔를 들여와 순종 교배를 하면서 한국형으로 개량하셨어요. 아버지 일을 지금 동생이 잇고 있어요.”
본래 흑돼지는 감칠맛이 뛰어나고 식감이 일품이지만 몸통이 작고 더디게 자라기에 사육 농장들이 선호하지 않았다. 이런 점을 개선한 버크셔케이는 여느 흑돼지와 다른 점이 있다. 우선 코, 다리, 꼬리가 흰색이다. 쫀득한 식감이 더 빼어나며, 특히 비계를 씹는 맛이 좋다. 비계에서 진정한 돼지고기 맛을 음미할 수 있다. 박 대표의 버크셔케이 자랑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육질이 촉촉하고 고소한 돼지를 만들자는 게 우리 생각이었죠. 근섬유 가닥수 개선, 불포화지방 수치 올리기 등 개량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농장에서 사육하는 돼지 수는 약 1만3천두다. 그가 자신이 만드는 샤르퀴트리보다 버크셔케이 설명에 힘을 주는 데는 이유가 있다. 먹거리 맛의 8할은 재료에서 나온다.
더찹샵에 들어서면 버크셔케이를 형상화한 각종 장식품이 눈에 들어온다. 와인을 껴안고 있는 돼지 인형과 식탁에 떡하니 자리한 흑돼지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박 대표는 본래 실내디자인을 전공했다. 군대 다녀온 뒤 대학을 다시 가 육가공 학사를 땄다. 유럽 육가공 단기 코스도 밟았다. 공간 안 디자인적인 요소들이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시선은 이내 앙증맞은 인형들 뒤로 향한다. 유리로 만든 공간 안에 주렁주렁 달린 염장 고기들이 보인다. 초리소, 장봉 등 버크셔케이로 만든 샤르퀴트리들이다. “여기서 돼지 정육도 하고 가공도 합니다. 버크셔케이 한마리를 6가지 부위로 쪼갭니다. 제일 먼저 앞다리는 그냥 분쇄합니다. 생창자에 넣어 만드는데, (소비자가) 많이 드시는 건 ‘페페드 살라미’, 초리소 등이죠. 몸통은 목살, 삼겹살, 등심인데 이 부위부터는 소금을 씁니다. 1년 발효시킵니다. 하몬(하몽,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인 뒤 장기간 건조·숙성해 만드는 것)은 4년 발효해 만듭니다.”
눈을 반짝이며 조리법을 설명하고는 ‘미식 관광’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시식하는 단계를 넘어 외연을 확장했다. 그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과거엔 이 지역 초·중·고등학교에서 소시지 체험을 했지만, 지금은 안 합니다. 대신 대학교 전공자 대상으로 3개월 걸리는 살라미 발효 체험을 합니다. 정원은 20여명 정도죠.” 그는 샤르퀴트리 마니아 체험도 얘기했다. “‘내 하몬 만들기’가 있어요. 자기 하몬을 만들어서 3년 뒤 찾아가는 겁니다. 코로나 팬데믹 때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합니다. 이 체험엔 다채로운 사람들이 와요. 돼지고기를 염지해 하몬 만들고 와인 파티 하고 가는 일정입니다.” 여기에 숙박까지 포함할 생각이라고 했다. 지역 인구 소멸 대책으로 자주 거론되는 체류 인구 증가에 일조하고 싶단다. 지난해 말엔 ‘버크셔케이 하몽 미식 관광’도 출시했다. 독일 등에서 온 외국인들이 체험했다고 한다.
그가 만든 샤르퀴트리는 현재 호텔, 유통 체인, 파인다이닝(고급 정찬) 레스토랑 등에 들어간다. 부친처럼 한국인 입맛을 고려해 염도를 낮췄다. 서양에서 유래한 먹거리지만 수출도 하고 싶다. 실제로 2024년 홍콩에 살라미를 수출하기도 했다. “홍콩 정도면 유럽에서 들어오는 것(샤르퀴트리)도 많았을 텐데, 우리 살라미를 케이푸드로 받아들이더라고요. 케이푸드 하면 한식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서 만드는 걸 다 케이푸드로 지칭하는 것 같았어요.”
그의 꿈이 영글고 있다. 잘 만든 샤르퀴트리로 케이푸드의 다양성을 세상에 선보이고, 이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와 체류 인구 증가에 도움 주고 싶은 바람 말이다.
남원/글·사진 박미향 선임기자 mh@hani.co.kr
남원 미식 여행 간 김에 여기도
광한루원은 남원의 대표 여행지다. 요즘 주목받는 정원의 우리식 옛 꼴을 살펴볼 수 있는 데다. 광한루, 호수와 오작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을 연못 가운데 형상화했다. 더운 날 야경이 특히 돋보인다. 우리 고전 춘향전을 테마로 한 ‘춘향테마파크’도 가볼 만하다. 조선 중기 서민 문화를 살필 수 있다. 옛 여행지는 더 있다. 승월교, 원각사 전망대 등이 몇년 전 재정비됐다. 원각사 전망대가 있는 덕음봉(높이 288m)에 오르면 남원 시내가 보인다. 현대적 건축인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전국권 여행지다. 자연과 어우러진 미술관은 물과 바람을 껴안는다. 남원 출신으로 한국 대표 화가 중 한명인 김병종 작가가 대표작들을 기증하면서 2018년 3월 개관했다.
남원/글·사진 박미향 선임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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