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의 눈] 통제 없는 '독립성'이 선관위를 망쳤다
이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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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법원 등 다른 헌법기관과 비교할 때 선관위에 대한 채용관리는 과도할 만큼 엄격하다.
모순적으로 개정 선관위법의 출발은 선관위 내부였다. 2023년 선관위에서 ‘아빠 찬스’, ‘형님 찬스’ 등 의혹이 쏟아져 나왔다. 선관위는 관행적으로 매년 30여 명의 지방공무원을 경력채용했다. 일반적으로 정부기관은 민간의 전문성을 활용하고자 할 때 경력채용을 하는데, 선관위는 경력채용으로 전문가가 아닌 공무원을 뽑았다. 선관위에서 경력채용은 공개경쟁채용에 합격하지 못해 지방공무원으로 임용된 선관위 간부·직원의 친인척을 끌어오는 수단으로 악용됐다.
논란이 거세지자 감사원이 선관위 감사에 착수했지만 선관위는 헌법적 관행을 내세워 이를 거부했다. 헌법재판소도 지난해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감사 대상이 아니라는 게 선관위의 채용관행이 옳다는 것은 아니었다. 개선해야 할 문제였다. 선관위법 개정은 그 결과다.
선관위의 간부·직원 친족 채용관행과 감사 거부, 이에 대응한 국회의 채용관리 강화는 선관위의 문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헌법과 선관위법에 보장된 선관위의 독립성은 정권의 부당한 외압으로부터 선거의 중립성을 지키고자 고안된 장치다. 하지만 통제받지 않는 독립성이 선관위를 망쳤다. ‘고인물’ 간부·직원들이 채용제도를 악용해 조직을 장악했고, 내부 경쟁이 사라졌다. 무사안일주의가 팽배하면서 선관위가 무능해졌다. 선거철에 휴직·휴가자가 쏟아지는 게 일상이 됐고 선거 때마다 어처구니없는 행정 참사가 벌어졌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도덕적 해이다. 헌법기관이 이 지경이 됐는데, 내부에서 ‘바꾸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벌어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도 그 연장선에 있다. 투표 수요예측에 실패했고, 즉각적인 대응도 하지 못했다. 곳곳에서 투표가 중단돼 참정권이 침해됐다. 그런데도 핑계가 우선이다. 선관위원장 등이 사퇴했지만 ‘조직’은 달라진 게 없다. 이번 사태를 단순한 ‘투표용지 부족’으로 다룬다. 조직문화 등 곪을 대로 곪은 환부에는 관심이 없다.
투표용지 사태는 참정권 침해로 끝나지 않는다. 운동경기를 예로 들어보자. 심판이 뛰는 게 귀찮아 선수를 놓치고 본 상황도 제대로 판단을 못 한다면 그 경기의 결과를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저질 경기’ 정도로 여겨지면 다행이다. 누군가에게는 심판에 의한 ‘경기 조작’으로 여겨질 것이다. 선거는 대의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수단이고 선관위는 심판이다. 심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도 무너진다. 그 끝은 대의민주주의의 붕괴다.
선거의 공정성 측면에서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은 항구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다만 선거와 무관한 일상적인 인사·조직·재무행정에 대해선 감시와 관리가 필요하다. 독립성 보장이란 게 ‘뭘 해도 개입하지 않겠다’는 방조의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선관위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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