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선거에서 떨어진 뒤에 기여금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제사회에서 독일의 외교 정책이 신뢰를 잃어 표를 얻지 못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5일(현지시간) 일간 타게스슈피겔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독일은 3일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투표에서 104표를 얻는 데 그쳤다. 이사국이 되려면 최소 127개국의 찬성을 받아야 하지만 독일은 이 기준을 넘지 못했다.
경쟁국이었던 오스트리아는 134표를 얻었고 포르투갈은 131표를 얻어 이사국 자리를 차지했다. 독일은 지난 2018년 선거에서 회원국의 96.8%가 찬성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찬성표가 54.7%로 뚝 떨어졌다.
선거 이후 독일 안에서는 반발이 거세다. 야권은 이번 결과가 외교 참사라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야당인 기독민주당 소속의 만프레트 펜츠 헤센주 국제장관은 유엔 분담금을 조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펜츠 장관은 "세계 최대 경제국 중 하나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논의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에서 마땅히 가져야 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왜 그렇게 많은 돈을 계속 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분담금 삭감을 주장했다.
독일은 유엔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돈을 내는 나라로 독일유엔협회에 따르면 2024년에 독일이 유엔에 지출한 돈은 약 44억유로다. 한화 7조9000억원 규모다.
독일은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돈보다 자발적으로 내는 기부금이 더 많다. 난민과 식량, 보건과 아동 같은 개별 기구에 내는 돈이 전체 기여액의 80%를 넘는다. 현재 유엔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에 분담금을 제대로 내지 않아 돈 가뭄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까지 돈을 줄이면 유엔은 더 큰 재정난에 빠지게 된다.
독일 안에서 분담금을 줄이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는 나라 살림이 어렵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복지 예산을 줄이면서도 군대와 기반 시설 구축을 위해 막대한 빚을 내고 있다. 독일 정부가 내년에 새로 감당해야 할 빚만 1965억 유로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351조 9000억원이다.
요한 바데풀 외무장관은 선거에서 탈락한 당일에 정부의 재정 적자를 언급했다. 바데풀 장관은 "(유엔 프로젝트) 참여 여부는 개별 사안을 살펴봐야 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독일의 이익을 좀 더 분명히 주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책임론이 쏠리자 다음 날에는 "지금까지 한 것처럼 유엔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라며 한발 물러섰다.
정부의 외교 정책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독일 정부가 이스라엘을 감싸고 미국의 눈치만 보다가 개발도상국들의 미움을 샀다는 해석이다. 녹색당은 "독일은 지난 몇 달 동안 국제무대에서 신뢰를 크게 잃었다"고 비판했다. 남미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의 무관심과 오만한 발언에 화가 났다는 지적이다.
메르츠 총리는 지난해 11월에 브라질을 무시하는 말을 해서 큰 비판을 받았다. 그는 브라질에서 귀국한 뒤에 "(기내에서) 함께 있던 기자들에게 '여기 남고 싶은 사람 있느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모두 독일로 돌아오게 돼 기뻐했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에두아르두 파에스 리우데자네이루 시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메르츠 총리를 '나치', '히틀러의 부랑자 아들'이라 부르며 강하게 분노했다.
외국 언론들도 독일의 외교 실패를 꼬집었다. 오스트리아 ORF 방송은 베아테 마이늘라이징거 외무장관에게 국제사회가 독일의 입장을 거부한 것인지 물었다. 마이늘라이징거 장관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오스트리아가 작은 나라지만 믿을 만한 파트너라는 신호"라고 답했다.
유로뉴스는 독일이 신뢰를 잃었다고 강하게 논평했다. 유로뉴스는 "독일은 명백히 신뢰를 잃었다. 정치적으로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경제적으로는 쇠퇴하는 국가로 여겨진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이어 "독일이 중환자실에 누워있다는 게 분명해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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