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 | 작가·‘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 저자
오늘도 열무와 상추, 부추로 밥을 먹었다. 3월부터 5월까지 심고 가꾸는 시절이다. 얼어 있는 땅이 녹기를 기다려 씨앗을 심는다. 조금이라도 흙에 뭔가를 심어본 사람이라면 그 행위의 기쁨에 공감할 것이다. 저마다의 씨앗들, 이 작고 작은 존재의 가능성! 가능성이 열리고 결실로 향해 가는 과정은 경이롭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씨앗 앞에서 항상 겸손하다. 하지만 이 시절에 먹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하여 지금 먹는 음식은 어쩔 수 없이 초봄에 싹을 올리는 나물이나 이른 봄에 잘 자라는 부추, 상추, 열무다. 그리고 이때 필요한 건 달걀이다. 달걀을 곁들이냐 그렇지 않냐에 맛이 질적으로 달라진다. 나는 시골로 이주하기 전에는 먹지 않던 달걀을 먹기 시작했다. 그 껍질은 좋은 거름이 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달걀을 사기 위해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읍내나 10분 거리에 있는 가까운 면으로 이동하는 것이 늘 만만한 일이 아니다. 버스 시간에 맞춰 간단한 장보기라도 하려면 최소한 3~4시간은 각오해야 한다. 버스를 타러 나가는 길도 위험하다. 보도가 없는 찻길 옆을 흰색 선 하나에 의지해 아슬아슬 10분 정도 걸어가야 비로소 버스정류소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버스정류소가 먼 동네로 ‘선정’되어 ‘행복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횟수가 제한되어 있지만. 그게 어딘가. 그런데 이 택시는 읍내와 마을 사이를 이동할 때만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외 다른 곳에는 갈 수 없다. 택시를 이용할 때마다 개인 정보가 택시 안에 울려 퍼지는 것은 복지에 따른 대가다. “○○○님, 잔여횟수 ×번”. 어째서 복지는 항상 개인 정보가 이렇게 쉬운 것일까. 어쩔 수 없이 가끔 택시를 이용하면서도 마음은 가라앉는다.
나는 여전히 차가 없으므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어제는 읍내에 있는 한 사무실을 주 3회 2시간 정도씩 청소하는 일에 지원했었는데 할 수 없었다. 사무실이 비는 저녁 7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하는데 그 시간에는 버스가 운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것도,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도 편하지 않다. 보고 싶은 책을 구하러 나가는 것도, 대출한 책을 반환하는 것도 번거롭다. 우편물이나 택배를 발송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시골에서 살면서 얻은 것도 있지만 대도시에서 당연했던 단순한 편리함을 잃었다.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겨 뿌리내린다는 건 이런 고단함과 어려움을 견디는 일이다. 단순한 편리함이 삶의 질을 좌우한다.
“주변에 시골로 이주해 온 여성들, 특히 중년 여성들이 중병에 걸려 사망하는 경우가 자주 보여요.”, “이제 귀촌을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가려 합니다.”, “캐나다로 이주하기로 했어요.”, “진안살이의 지속성을 고민하고 있어요.” 최근 몇년 사이 주변 여성들이 떠나고 있다. 나는 여전히 고립감을 견디며 버틴다.
시골살이의 고단함이 시골로 이주한 여성들만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가난과 고립, 차별적인 관습은 마땅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 나는 시골로 이주한 여성의 삶이 나아지는 것이 곧, 모두의 삶이 더 나아지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삶을 더 나아지도록 할 수 있을까? 항상 그렇듯 방향은 크게, 방법은 소소하게 모두에게 좋은 방법으로 생각하기.
마을마다 공공 잡화점이 있으면 좋겠다. 이 잡화점에서 사람들은 남거나 안 쓰는 물품이나 작물, 가공품들을 교환하거나 판매한다. 일자리와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택배나 우편물을 받고 부친다. 책을 빌리고 반환할 수도 있다. 물론 이 공공 잡화점은 마을에서 운영하고, 행정이 예산과 시설과 시스템을 뒷받침한다.
삶에 뿌리내리기 좋은 시골살이, 자치와 자립을 지원하는 정치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