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제이(CJ)그룹의 여성 직원 330여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돼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유포된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들은 악의적인 아카이빙과 성범죄 악용 가능성을 제기하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회사 쪽의 미온적이고 일관되지 못한 대응이 불안감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24일 한겨레와 대화를 나눈 피해자 5명은 다수의 여직원의 프로필 사진 등이 무차별적으로 수집돼 근무지·전화번호 등 개인정보와 함께 게시된 사실을 확인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ㄱ씨는 “얼굴과 전신이 잘 보이는 사진만 선별해 올린 것 같다. 사진이 수십장씩 유출된 분들도 있는데,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고 말했다. ㄴ씨는 “피해 대상이 20~30대 여성에 집중돼 있고 얼굴이 잘 나온 사진만 수집됐다는 점에서, 성적인 목적으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가장 무섭다”며 “해당 텔레그램 방의 구독자가 2900명에 달해 실제 대면하는 사람 중에 구독자가 있었을까 봐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앞서 한 텔레그램 채널에 씨제이그룹 여성 직원 330여명의 사진과 개인 정보 등이 게시된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직무지역, 근무시간, 직무·직급 등 사내 인트라넷에서 조회할 수 있는 정보가 함께 수록돼 회사 내부자 소행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해당 채널은 최근 폐쇄됐는데, 이전에 두차례에 걸쳐 가상화폐를 통해 채널 소유권이 거래된 전력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최소 4~5년 전부터 사내 인트라넷을 모니터링하며 정보를 수집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ㄱ씨는 “2024년에 사진이 올라왔는데, 소속 부서가 2022년 당시 팀 이름으로 돼 있는 것을 보면 상당 기간 정보를 아카이빙했다가 업로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근무지가 특정되거나 사생활이 노출돼 일상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ㄷ씨는 “매장직이라 근무지명이 적혀 있는데 매장이 특정되니 매일 만나는 불특정 다수의 고객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상상하는 게 너무 괴롭다”고 했다. ㄹ씨는 “텔레그램 채널을 보니, 마치 쇼윈도에 전시된 상품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너무 끔찍했다”고 말했다. ㅁ씨는 “트라우마가 남아서 사건 이후 카카오톡을 쓰기가 힘들어 문자로 소통하고 있다”면서 “어디서 어떻게 수익화됐는지가 가장 꺼림칙하다”고 전했다.
유출 게시물이 올라간 시기를 전후해 스팸 연락이나 수상한 접근 등을 겪은 피해자도 있었다. ㄷ씨는 “정보가 유출된 시점에 스팸이 급증했었던 게 떠올라 더 불안하다. 당시 매장으로 모르는 남성이 전화를 걸어 성적인 질문을 했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사건 초기 회사가 유출 사실을 알리면서 사안을 축소하려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ㄱ씨는 “처음 회사의 안내 메시지만 보고는 쿠팡에서 개인 정보가 털린 수준인 줄 알았다”며 “나중에야 다량의 사진이 함께 유출된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씨제이그룹은 지난 19일 유출 사실을 공지하면서 “성명, 이메일, 회사명, 부서명, 사무실·휴대전화 번호, 직무지역, 근무시간, 직무‧직급” 정보가 유출됐다고 알린 바 있다.
전체 계열사에서 광범위한 피해자가 발생된 점에 대해서도 충격적이란 반응이다. ㄷ씨는 “직원 한명이 사내망에서 여러명을 검색하는 동안 보안팀에서 왜 먼저 인지하고 조처를 못 했는지 모르겠다”며 “다른 계열사 조직도는 볼 수 없는데 대체 어떤 방식으로 전체 계열사에 걸쳐 피해자 정보를 모았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재직자와 퇴직자가 일괄적으로 안내받고 소통할 수 있는 공식 플랫폼, 피해 모니터링 전담부서 마련 등을 회사 쪽에 요구하고 있다. ㄴ씨는 “회사에서 정보가 유출돼 마치 상품처럼 공개된 만큼 조사 진척 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피해자의 고소 등도 실효성있게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씨제이그룹은 “사고 인지 후 채널 폐쇄와 피의자 고발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한분 한분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면서 “유출로 우려되는 사항을 지원하기 위해 법률 지원을 비롯해 심리상담, 핸드폰 번호나 유심 변경 등 지원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 쪽은 내부 유출자로 직원 1명을 특정해 관련 자료를 경찰에 넘긴 상태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