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시작한 뒤로, 나는 서울의 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낮에는 그냥 지나쳤던 다리가 밤이 되면 빛을 품고, 익숙했던 공원이 어둠 속에서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야간 러닝은 단순히 ‘늦게 달리는 것’이 아니다. 같은 길을 다른 시간에 달리는 일, 그러니까 도시의 또 다른 결을 몸으로 읽는 일이다. 고요하게 빛나는 공원 산책로, 그리고 서울 야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전망대까지. 밤에 달려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서울의 얼굴을 두번에 나눠 소개한다.
올림픽공원 나이트 러닝 코스
지하철 몽촌토성역 1번 출구→평화의 광장→몽촌 해자 산책길→몽촌토성길 외곽 순환→몽촌토성역 복귀(한바퀴 약 3㎞. 체력에 따라 두세바퀴까지 확장 가능)
올림픽공원은 낮에도 아름답지만,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시간에 달리면 전혀 다른 공원을 만난다. 몽촌토성역에서 출발해 평화의 광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하늘이 천천히 붉어지기 시작한다. 넓은 잔디 광장 너머로 노을이 번지고, 공원 안 조명들이 하나둘 켜지는 그 경계의 시간이 이 코스의 시작이다. 평화의 광장을 지나 몽촌해자 수변 길로 접어들면 호수 위로 어둠이 내려앉는다. 수면에 반사되는 가로등 불빛이 길게 흔들리고, 나무 그늘 사이로 공원 조명이 은은하게 스며든다. 낮에는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하던 이 길이 밤이 되면 조용하고 깊은 산책로로 바뀐다. 발소리와 바람 소리만 남는다.
몽촌토성길 외곽으로 나서면 이 코스의 숨겨진 선물을 만난다. 토성 능선 너머로 서울 도심의 야경이 펼쳐지고, 그 위로 롯데타워의 불빛이 선명하게 솟아 있다. 공원 안에서 바라보는 도심 야경은 묘한 대비를 만든다. 울창한 나무와 어두운 토성 길 위에서 바라보는 반짝이는 도시. 자연 속에 있으면서 도시를 바라보게 하는 이 코스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2천년 전 사람들이 쌓은 토성 위에서 현대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달리는 일. 올림픽공원의 밤은 그런 묘한 시간의 겹침을 선사한다.
북서울꿈의숲 나이트 러닝 코스
북서울꿈의숲→숲길 오르막→능선 길→월영지 호수→오동근린공원 연결 둘레길 순환→북서울꿈의숲 복귀(총 약 4.4㎞. 순환 가능. 오르막 구간 반복 훈련 가능)
북서울꿈의숲의 밤은 한강의 야경이나 공원의 조명과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울창한 숲이 도시의 소음을 삼킨다. 오르막이 시작되는 순간 시작한 달리기는 온전히 몸과의 대화가 된다. 숲길 오르막에 들어서면 호흡이 달라진다. 평지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심박수가 올라오고, 다리에 힘이 실린다. 발밑에는 바닥 조명이 은은하게 길을 밝히고, 나무마다 조경 조명이 스며들어 숲 전체가 빛난다. 낮의 숲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야간 러닝에서 오르막은 낮보다 달리기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시야가 좁아지고, 발밑과 호흡에만 신경이 쏠린다. 그 몰입감이 이 코스의 첫번째 매력이다.
능선에 올라서면 숨이 트인다. 나무 사이로 서울의 야경이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도봉산과 북한산의 능선이 어둠 속에 실루엣으로 남고, 그 아래로 도시의 불빛이 넓게 깔린다. 달려 올라왔기에 더 선명하게 보이는 풍경이다. 내려오는 길은 월영지 호수를 끼고 이어지다 오동근린공원 둘레길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공원과 공원 사이를 계속 달리는 이 구간이 이 코스의 진짜 매력이다. 숲길이 이어지는 동안 도시는 저 아래에 있고, 러너는 그 위를 조용히 달린다. 총 4.4㎞, 짧지 않지만 짧게 느껴지는 코스다. 오르막 훈련을 원한다면 능선 구간을 여러번 반복해 달려도 좋다. 올라갈 때마다 다리는 무거워지지만, 능선에서 마주하는 야경은 매번 달리기의 이유가 되어준다.
이재진 ‘마라닉TV’ 운영·‘러닝 챌린지 100’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