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성범죄 사건의 무죄 비율이 일반 재판으로 진행될 때보다 현저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가 배심원 앞에서 피해 사실을 제대로 진술하기가 어렵고, 진술 외에 다른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은 성범죄 사건의 특성 탓이다.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제고하기 위해 도입한 국민참여재판이 성범죄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단을 이끌어내는 통로로 작동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한겨레가 법원행정처 통계를 인용해 보도한 기사를 보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성범죄 사건의 무죄율은 2024년 52.3%로, 일반 재판의 3% 수준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실형 선고 비율은 강도 등 강력범죄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로 인해 국민참여재판 접수 사건 가운데 성범죄가 4건 중 1건꼴로 많았다. ‘성범죄=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인식이 만연한 게 아닌지 우려될 정도다.
이런 현상은 성범죄 사건의 특성과 연관이 있다. 성범죄는 밀폐된 상황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유무죄 판단의 핵심이 된다. 이 과정에서 변호인은 진술의 불일치나 사건 이후 피해자의 행동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는다. 신고 지연이나 일상생활 복귀, 가해자와 연락 유지 등이다. 법원은 대법 판례를 통해 ‘피해자다움’을 기준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확립했지만,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에게는 이러한 법리가 충분히 공유돼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일찌감치 배심제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은 성범죄 사건의 경우 배심원 선정 단계에서 일대일 면접을 통해 성 고정관념을 걸러내는 절차를 운영한다. 재판이 시작되면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성범죄의 특수성을 설명하고 유무죄 판단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성적 편견이 작동할 여지를 제도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대책이 이미 제시돼 있다. 배심원 선정 절차를 보완하고, 공판 전 표준화된 설명을 제공하는 방안 등이다. 피해자가 반복적으로 진술해야 하는 부담을 줄이는 절차적 개선도 시급하다.
“피해자 진술 외에 직접 증거가 없는 사건, 국민참여재판 경험이 있는 법무법인의 도움을 받으세요.” 국내 한 로펌의 성범죄 사건 홍보 문구라고 한다. 국민참여재판이 성범죄 피고인을 위한 전략적 선택지로 변질된 현실을 보여준다. ‘국민의 참여’가 아니라 ‘편견의 개입’이 판결을 좌우하도록 놔둬선 안 된다. 사법부는 당장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