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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투자 생태계에서 창업자는 유일한 '상수'이고 나머지 조건은 '변수'라고 본다. 딥테크 분야에서 투자 활동을 한다고 하면 "기술력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답변은 한결같다. "아무리 압도적인 기술도 시장의 변화 앞에서는 일시적이며,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의 기회를 포착하고 비즈니스로 구현해 내는 것은 결국 창업팀의 몫이다."
아무리 정교한 기술이라도 시장이 원하지 않으면 실험실의 발명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반대로 거대한 시장이라도 그것을 예리하게 읽고 실행하는 팀이 없다면 기회로 전환되지 않는다. 이는 오랜 투자 경험이 쌓일수록 단단해진 믿음이다. 다만, 우리가 목도하는 이 변수의 탈바꿈은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예사롭지 않다. AI로 인해 창업의 진입 장벽과 초기 비용 구조 자체가 통째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예비 창업자들의 첫 번째 과제는 분명했다. 시드머니를 유치해 우수한 개발자와 기획자를 모아 번듯한 팀을 꾸리는 일이었다. 초기 자본의 상당 부분은 핵심 인력의 인건비로 소진됐다.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의 시간을 온전히 쏟아부어야만 비로소 시장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고, 그렇게 만들어낸 결과물로 다음 라운드 투자를 준비하는 것이 통용되던 창업의 공식이었다.
지금은 그 견고했던 전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자본 없이도 일정 수준의 검증이 가능해졌다. 소수의 팀이 과거에는 수십 명이 매달려야 했던 거대한 과제에 뛰어들고 있다. 제품의 설계, 개발, 검증의 상당 부분을 AI가 대신한다. 딥테크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방대한 신소재 탐색이나 거대 연구시설 설계처럼 대규모 연구 인력이 수년을 매달려야 했던 무거운 과제조차, AI를 지렛대 삼아 빠르게 다듬어지고 있다.
변수가 바뀌면 셈법 역시 바뀔 수밖에 없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동일한 규모의 투자금으로 창업팀에 기대할 수 있는 마일스톤의 수준이 훌쩍 높아진다. 가설 검증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만큼, 더 높은 목표나 뾰족한 지표를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모험자본이 과거보다 훨씬 더 대담한 베팅과 압도적인 효율을 창업자에게 요구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창업자 입장에서 느끼는 압박감도 커졌다. 투자 유치 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 만큼, 심사역과 투자자 앞에 서는 시점의 무게감이 완전히 달라졌다. 가능성을 설득하는 자리에서, 이미 만들어낸 실제적인 속도와 실행력을 증명하는 자리로 변모하고 있다. 초기 자본이나 인력이 부족해서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변명이 설득력을 잃어가는 냉혹한 시대가 온 것이다.
현장에서는 이미 온도 차가 뚜렷하게 느껴진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AI를 뼈대로 삼아 설계된 팀과 기존 구조 위에 뒤늦게 AI를 얹으려는 팀 사이의 간극이다. 똑같은 도구를 쥐고도 전혀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어제까지의 강점이 오늘날 기민한 대응을 막는 짐으로 전락하는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을, 스스로 폐업을 결정하는 팀들이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누구나 프로토타입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됐다는 말은, 프로토타입만으로는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변수가 이토록 빠르게 바뀌는 시대일수록, 상수의 의미는 더욱 선명해진다. AI가 개발 속도를 나눠주고 비용을 낮춰주었지만, 어디를 향해 달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팀의 몫이다. 방향성을 정의하고, 시장을 개척하며, 전략을 짜는 것은 AI가 대신할 수 없다. 혁신을 돕는 도구가 평준화될수록 그 도구를 쥔 사람의 방향과 실행의 밀도가 오히려 더 투명하고 날카롭게 드러날 뿐이다. 투자에서 창업자가 상수인 이유는 변하지 않았다. AI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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